“평생 처음보는 물폭탄…순식간에 마을 덮쳐”
산사태 덮친 산청군 부리 내부마을
도로·수도·전기 끊겨 주민들 고립
“산 정상에서부터 흙더미와 나무가 쓸려 내려오며 순식간에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피하고 말고 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20일 오전 경남 산청군 산청읍 부리 내부마을. 이곳 산사태 피해 현장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와룡산 자락 300m 정상에서부터 쏟아져 내린 엄청난 양의 흙더미는 축사와 식당, 가정집을 덮치며 흔적도 없이 삼켜버렸다. 마치 일부러 길을 다진 듯, 정상에서부터 산 아래까지 가파른 경사를 따라 만들어진 수백미터 흙길만이 참혹한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산사태로 70대 부부와 20대 여성이 흙더미에 매몰돼 사망했다.
70대 노부부는 쏟아지는 비에 축사를 살피러 갔다가 매몰돼 수색과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온 몸에 생채기 투성이인 두 마리 소가 간신히 살아남아 주변을 맴돌며 울고 있었다.
축사 아래 가정집에 있던 20대 여성도 쓸려온 흙더미에 집이 무너지며 숨졌다. 아버지와 오빠는 크게 다쳤다.
산사태 흔적은 이곳 뿐 만이 아니다. 골짜기 사이에 자리를 잡은 마을이다보니 마을 곳곳에는 큰 상처를 남겼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마다 흙더미가 흘러내린 흔적이 참상을 보여줬다. 양쪽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와 나무, 돌무더기들은 골짜기 사이에 난 하나 뿐인 아스팔트 길에 차곡차곡 쌓여서야 멈췄다.
내부마을 입구 중앙에 위치한 당산나무 옆 도로에는 사람 키보다 큰 바위덩어리들이 길을 뒤덮고 있었다.
한 주민은 “산에서 토사와 돌들이 굴러내려 오는 것을 보고 가까스로 피했다”고 말했다.
마을 도로는 대부분 토사로 뒤덮였고, 패이고 뒤집어진 도로 구덩이로는 쉴 새 없이 빗물이 흘러넘치며 작은 폭포가 만들어졌다.
곳곳에 발생한 산사태에도 집을 비켜나간 사람들은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쉰다. 또 다른 산사태가 축사를 덮쳐 키우던 50여 마리 소 중 절반이 매몰됐다는 이 모씨는 “사람 사는 집도 보수하기 바쁜데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작은 마을에 닥친 참사로 주민들은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90대 한 노인은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린 건 처음인데, 먼저 간 사람들 어찌 할꺼나”라며 하염없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김광만 내부마을 이장은 “대피하라고 몇 번이나 방송했지만 그사이 쏟아져 내린 토사는 말 그대로 순식간에 모든 걸 앗아갔다”고 말했다. 김 이장은 “마치 양동이로 때려 붓는 듯 쏟아내렸다”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만 간신히 들쳐 업고 피신했다”고 회상했다.
주민들은 이 마을에서 40여년 전에도 비슷한 참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1981년 늦여름 무렵 태풍으로 산사태가 발생해 3명이 매몰돼 숨졌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곳과는 불과 200여m 거리였다. 한 주민은 “그 당시 세 집이 산사태로 무너졌고 우리집만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이번 사건을 돌이켜보니 주변 산들이 마사토 흙이 많다보니 산사태에 취약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엉터리 조림으로 산사태를 키웠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산청군이 멀쩡한 산림을 잘라내고 편백나무 숲을 만든다며 어린 나무로 바꿨다는 것인데, 실제 마을 가운데 위치한 저수지에 접한 산 4~5군데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김 모씨는 “만약 저수지 둑이 터졌다면 더 큰 참사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사태가 발생하며 마을은 도로가 막힌 것은 물론, 전기와 수도도 모두 끊겼다.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피신했지만 선풍기조차 가동이 되지 않는다. 사실상 고립된 셈이다.
한 주민은 “도로가 막혀 마실 물도 구할 수 없는데 군청 공무원은 마을에 와 보지도 않는다”며 “한전도 일요일이라고 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번 집중호우로 산청 지역 인명 피해는 사망 10명, 실종 4명에 이른다. 경남도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산청 등 집중호우로 피해가 심각한 지역에 대한 특별재난지역 지정을 요청했다.
곽재우 기자 dolboc@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