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의 그늘…저소득층일수록 가계적자 더 커졌다
하위 10% 가계 월평균 적자 70만원 넘어서
사업소득·이전소득 감소에 고물가 직격탄
소득 하위 10% 가계의 ‘월 적자’가 사상 처음 70만원을 넘어섰다.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10% 가구(1분위)의 처분가능소득보다 소비지출이 더 많아진 규모가 70만1000원에 달한 것이다. 경기침체가 저소득층 살림을 집중적으로 옥죄는 모양새다. 고소득층은 오히려 흑자폭이 커졌다. 불황이 결과적으로 ‘빈익빈부익부’를 부추긴다는 경제원칙이 현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소득 줄고 지출 늘어 = 2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의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2025년 1분기 전국 가구당 월평균 흑자액은 127만8611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12.3% 증가했다. 흑자액은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을 뺀 수치로, 가계가 실제로 남기는 여유 자금을 말한다.
하지만 소득 하위 10%인 1분위 가구는 적자를 기록했다. 월평균 적자액은 전년(57만3000원)보다 22.3% 늘어난 70만1000원이다.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9년 이후 처음으로 ‘70만원 선’을 넘어섰다.
1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56만4000원으로 전년 대비 6.4% 감소했다. 근로소득이 17.2% 늘었지만 사업소득이 30.9% 급감했고 이전소득도 3.2% 줄면서 전체 소득 감소를 이끌었다. 반면 소비지출은 126만5000원으로 7.6% 늘어났다.
소득 기반이 취약한 저소득층, 특히 자영업자들이 더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불황 때는 월급쟁이가 최고’란 세간의 말이 사실임을 입증한 셈이다. 저소득층은 특히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식비, 주거비, 공공요금 등 필수 지출은 줄이기 어려워 실질 소비 감축이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목된다.
◆2분위도 가계살림 적자 = 2분위(소득 하위 10~20%)도 여전히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의 월평균 적자액은 17만4500원으로 전년보다 23.4% 늘었다. 반면 3분위(하위 20~30%)부터는 흑자 전환이 이뤄졌다.
고소득층일수록 흑자 폭은 더 컸다. 소득 상위 10%인 10분위 가구의 월 평균 흑자액은 531만원으로 1년 전보다 11.7% 증가했다. 9분위는 264만원, 8분위는 191만5000원으로 각각 10.7%, 23.1%의 증가세를 보였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1분위는 필수소비 비중이 크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거나 소득이 줄어도 소비를 줄이기 어렵다”며 “근본적인 문제는 소득의 불안정성”이라고 지적했다.
소득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정부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이사장은 최근 토론회에서 “김영삼정부 이후 역대정부를 거치며 6%대 성장률에서 매 정부마다 1%씩 떨어져 장기 성장률이 하락하고 상위 10%가 국부의 47%를 차지하는 심각한 소득 불균형으로 이어졌다”면서 “경제 규모를 키우되 분배의 규칙을 바꿔 부자와 경제적 약자 모두 성장의 과실을 가져가되, 경제적 약자의 몫이 조금 더 크게 하자”고 제안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