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인도주의 모델은 인간 존엄 훼손”

2025-07-22 13:00:03 게재

국제사회, 강력한 경고

25개국과 EU 공동성명

유엔 총장·교황까지 나서

가자지구에서 구호품을 받기 위해 몰린 민간인들이 이스라엘군 총격으로 대거 사망하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국제사회가 일제히 강력한 우려와 비판을 표명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일본, 캐나다 등 주요 7개국(G7) 가운데 5개국을 포함한 25개국 외무장관들과 유럽연합(EU)은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즉각적인 휴전과 인도주의 지원 허용을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가자지구의 전쟁은 지금 당장 끝나야 한다. 민간인의 고통은 한계를 넘었다”고 경고하며, 현재 이스라엘 정부가 운영 중인 구호품 전달 시스템이 “위험하고 불안정을 초래하며 가자 주민들의 인간 존엄을 해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이스라엘에 대해 유엔 및 인도주의 비정부기구(NGO)의 안전하고 효과적인 구호 활동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문제의 핵심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지난 5월부터 공동 운영 중인 ‘가자인도주의재단(GHF)’이다. 이 재단은 기존 유엔 주도 체계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도입됐으며, 하마스가 구호품을 탈취한다는 이유로 가자 전역의 직접 지원을 차단하고 제한적 배급만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GHF 배급소에서조차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민간인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정당성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가장 최근의 참사는 7월 20일 발생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이스라엘에서 넘어온 식량 트럭 25대가 가자지구 북부에 진입했을 때 굶주린 주민들이 트럭 주변으로 몰리자 이스라엘군이 발포해 80명이 현장에서 숨졌다고 전했다. 같은 날 남부 라파 지역 배급소에서도 9명이, 칸유니스 지역에서 4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가자지구 민방위대는 이스라엘군이 구호품을 받으려는 주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가자지구의 마지막 생명선이 무너지고 있다”며 “가족을 위해 식량을 구하던 이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규탄했다. 그는 “이스라엘은 유엔과 기타 인도기구들의 구호물자 접근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 허용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스라엘에 유엔 시설 위치를 사전 통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엔 게스트하우스 두 곳이 공격당했다고 밝히며, 인도주의 요원 및 민간인 보호를 위한 필수 자원의 제공을 촉구했다.

종교계와 왕실 인사들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바티칸 광장에서 열린 주일 삼종기도 후 “야만적인 전쟁을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한다”며 가자에서 사망한 이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고 국제사회에 인도법과 민간인 보호 원칙을 지킬 것을 거듭 당부했다.

같은 날 벨기에의 필립 국왕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 상황은 인류에 대한 수치”라며 “유럽이 보다 강한 도덕적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이 같은 목소리와는 달리 미국과 독일은 이번 공동성명에 불참했다. 유럽 내에서도 EU 집행부는 주말 사이 발생한 가자지구 대규모 사망 사태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아 책임 회피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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