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수출 허용 H20 “재고 부족”
SK하이닉스의 수혜 제한
TSMC 재생산까지 9개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 H20의 중국 수출을 부분 허용했지만, 정작 현지 공급은 당분간 원활하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수출 규제 과정에서 이미 생산 계획이 전면 중단된 탓에 재가동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은 20일(현지시각) 복수의 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엔비디아가 최근 중국 고객사들에게 H20 칩의 재고가 극도로 제한적이라고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엔비디아가 지난주 중국 내 H20 칩 출하 재개를 공식 발표한 지 불과 며칠 만에 나온 소식이어서 업계에 당혹감을 주고 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정부가 H20 칩에 대한 추가 수출 제한 방침을 발표하자, 엔비디아는 즉각 기존 고객 주문을 일괄 취소하고 위탁 생산업체인 대만 TSMC와의 생산 계약도 철회했다. 이에 따라 TSMC는 해당 생산라인을 다른 고객사 물량으로 전환했고, 현재 H20 칩을 새롭게 생산하려면 최소 9개월의 준비 기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즉각적인 생산 재개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H20에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혜 효과도 예상보다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구나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부터 H20용 HBM3E 8단 제품 공급을 개시해 3분기까지 지속 생산할 계획인 것으로 파악됐다. 바이트댄스, 텐센트 등 중국 주요 기업들의 H20 수요가 꾸준한 점을 감안하면 향후 추가 생산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것이 업계 관측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주 베이징에서 열린 행사에서 “기존 재고 범위 내에서만 출하를 진행할 예정이며, 당분간 생산 재개 계획은 없다” 명확히 선을 그었다고 디인포메이션은 전했다.
현재 엔비디아는 중국 내 주요 고객사들과 접촉을 통해 AI 반도체 전반의 수요 규모를 재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보유 재고를 소진한 뒤 수 분기 후 본격적인 추가 생산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엔비디아는 H20 대신 신제품으로 중국 시장 수요를 흡수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중국 전용 신규 GPU(그래픽처리장치) ‘RTX Pro’(B40) 개발이 대표적이다. 이 제품은 H20보다 성능을 의도적으로 낮춰 미국의 수출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도록 설계됐다. 다만 고부가가치 HBM D램 대신 일반 그래픽용 D램인 ‘GDDR7’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 메모리 업체들의 수혜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가 엔비디아와 AMD의 중국 수출을 허용한 데 대해 미국 의회 내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하원 중국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공화당 존 물레나 의원은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핵심 AI 기술의 중국 판매는 허용돼선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H20 칩이 슈퍼컴퓨터 수준 클러스터 구축 등 수출 규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으며, 규제 기준도 중국 내 기술 수준이 아니라 미국의 첨단 반도체 성능과 비교해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