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방청유<녹 방지 기름> 노출된 노동자 “요양급여 대상”
법원 “의학적 증명 안 돼도 … 작업방식·근무환경 인정돼”
자동차공장 엔진부서에 근무하다 16년 동안 방청유에 노출돼 ‘피부근염’을 진단받은 노동자에 대해 법원이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더라도 요양급여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노동자가 유해물질에 노출된 작업 방식과 근무 환경 등을 고려하면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이유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박은지 판사는 임 모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 처분취소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1992년 A자동차 공장에 입사한 임씨는 2003년부터 약 16년 동안 자동차 엔진 부품인 크랭크샤프트부서에서 가공작업을 해 오다가 2019년 9월 자가면역질환인 ‘기타 피부근염’을 진단받았다.
크랭크샤프트는 자동차 엔진에서 피스톤의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꾸는 부품으로, 임씨는 표면의 부식방지를 위해 1일 약 900회 분사되는 방청유(텍틱 알피 361B)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임씨는 2020년 5월부터 방청유 등 유해물질에 오랜 기간 노출돼 ‘기타 피부근염’이 발생했다며 요양급여를 신청했으나, 공단이 이를 거절하자 소송을 냈다.
임씨는 재판에서 “사업장에 설치된 집진기는 집진 기능이 상실된 상태였고, 환기시설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방청유 등 유해물질에 과다 노출됐다”고 주장했다.
공단은 “원고가 수행한 업무와 기간, 방청기와의 거리(9.4m)로 볼 때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이에 법원이 2명의 감정의에게 진료기록 감정을 촉탁했는데, 이들의 소견이 엇갈리면서 ‘의학적 근거’ 여부가 쟁점이 됐다.
작업환경의학과 감정의는 ‘유기용제가 면역체계에 충분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 반면 류마티스내과 감정의는 ‘유기용제와 관련한 의학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한 것이다.
박 판사는 “방청유 등 유해물질과 이 사건 상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더라도 그것만으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며 “작업 방식, 유해물질의 종류와 위험성, 근무 환경 등을 고려하면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방청유 사용빈도가 높거나 노출이 심한 경우에는 피부접촉 시 알레르기 반응, 자국, 피부장애가 있을 수 있다”며 “원고는 방청유가 상시 분사되는 상태에 만성적으로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고는 이 사건 사업장에 근무하기 이전에는 특별한 직업력은 없는 것으로 보이다”며 “ 이 사건 상병 진단 당시 만 51세로 수년간의 건강검진 내역상 기저질환 또는 이상소견이 없었다”고 밝혔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