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대 수시, 실기 역량보다 전형 적합성이 관건
상위권 체대 학생부 중심 선발 늘어…교과·종합·논술전형 등 다양한 기회 제공
과거 체육 분야 전공자는 주로 선수, 지도자, 체육 교사 등 제한된 진로로 진출했지만 최근 들어 스포츠 산업이 확장되고 다른 분야와의 융합이 활발해지면서 진로 분야가 훨씬 다양해지고 있다. 스포츠 마케팅, 스포츠 행정, 운동 재활 트레이닝, 스포츠 콘텐츠 기획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더불어 스포츠 구단, 헬스케어 스타트업, 국내외 스포츠 브랜드 등에서도 체육계열 전공자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주요 체대의 높아진 경쟁률과 입결, 다양해진 대입 전형 방법이 이를 방증한다. 체대 수시전형은 일반학과의 모집 방법과 비슷한 점도 많지만 차이점도 상당하다. 나에게 맞는 전형을 찾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수시로 체대에 진학하는 방법을 살펴봤다.
“실기에 매달리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전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체육계열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던져지는 조언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체대 입시의 핵심이었던 실기 평가 비중이 줄어들고 학생부 중심 선발이 확대되면서다.
2026학년 수시 모집에서 상당수 대학이 체육계열 모집 단위를 비실기전형으로 운영한다. 경희대 서울과학기술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성신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 등은 실기 없이 학생부만으로 선발한다. 일부 대학 교과전형에서는 서류 평가 1단계 합격 후 2단계에서 20~40% 정도 실기를 포함하지만 실기의 영향력은 적다.
◆비실기전형 확대로 경쟁률 상승세 = 실기 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체대를 갈 수 있는 문이 넓어지면서 체육계열 대학은 전반적으로 경쟁률이 상승했다.
류한창 서울 여의도고 교사는 “과거에는 체육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은 공부보다 운동에 흥미가 있어 체대에 관심을 두게 된 경우가 많았다”며 “실기에 전념하느라 내신이나 수능 등 학업 관리를 소홀히 하기 쉬웠다”고 설명했다.
비실기전형은 대개 학생부를 중심으로 선발한다. 그렇다보니 내신과 학생부를 꾸준히 관리한 학생이 좋은 결과를 얻는 사례도 늘었다. 특히 중상위권 대학일수록 학생부 교과와 비교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기에 실기에만 집중하는 전략은 위험하다.
비실기전형으로 선발하는 상위권 대학의 경우 일반학과와 합격선 차이가 크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체대에 큰 뜻이 없더라도 수시 6장 중 1~2장 정도를 체대에, 나머지는 일반학과로 지원하는 학생도 다수다.
김경선 서울 숭문고 교사는 “수시 교과전형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며 “막상 합격해 입학하더라도 진로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체대를 선택한 경우 전과율이 높게 나타난다”고 조언했다.
◆수능 최저기준과 학생부 평가 비중 커져 = 체대 수시전형은 크게 교과전형 종합전형 논술전형 실기·실적전형 등으로 나뉜다. 이 중 선수를 목표로 하지 않는 내신 성적 중상위권 학생은 수시 교과·종합전형에 도전해볼 만하다.
자신이 어떤 전형에 적합한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크게 세가지다. 학생부, 수능 성적, 정시 실기 준비 여부다. 1단계 서류 평가에서 학생부 교과 성적은 교과전형은 물론 종합전형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김 교사는 “수도권 체대 수시 비실기전형은 2등급 초중반의 높은 교과 성적을 바탕으로 학교생활을 충실히 한 학생을 선발하는 학생부 중심 전형이 대부분”이라며 “교과 성적이 4등급이 넘는다면 합격 가능성이 낮기에 도전을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으로 수능 준비를 얼마큼 했는가를 따져야 한다. 상위권 체대는 교과전형과 일부 종합전형에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적용한다. 이화여대 체육과학과는 수시에서 예체능서류전형만으로 전체 모집 정원 45명의 1/3인 15명을 선발하는데 실기 평가 없이 1단계 서류 100%, 2단계 서류 80%+면접 20%를 반영한다.
최저 기준은 국어·수학·영어·탐구(상위 1과목) 중 3개 영역 등급 합 9 이내다. 김 교사는 “결국 최저 기준 싸움”이라며 “수능 준비를 꾸준히 해온 학생에게는 적극 활용할 만한 기회”라고 설명했다.
◆진로 연계 선택과목과 면접 준비 중요 = 중상위권 체대 수시전형에서 학생부 평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비실기전형뿐 아니라 2단계 실기 평가를 포함한 대학 역시 마찬가지다. 2단계 평가에서도 1단계 서류 평가가 50~80%로 학생부가 당락을 가르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종합전형을 염두에 둔다면 체육 관련 진로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과목 선택이 중요하다. 고1을 기준으로 보면 ‘스포츠문화’ ‘스포츠과학’ ‘운동과 건강’ ‘스포츠생활1’ ‘스포츠생활2’ 등이, 고2·3은 ‘운동과 건강’ ‘스포츠생활’ 등이 대표적이다.
류 교사는 “체육계열과 직결되는 과목이 현 고교 과정엔 많지 않다”며 “하지만 대학 전공의 기본 소양을 갖출 수 있는 과목은 많다”고 전했다. 스포츠계열 중 교사를 희망하는 학생이라면 교양 과목인 ‘교육학’, 스포츠과학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물리학Ⅰ’ ‘생명과학Ⅰ·Ⅱ’ 등의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경희대 국민대 서울과학기술대 서울대 서울여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한국외대 등은 종합전형에서 서류 평가로 1단계 합격생을 선발한 후 2단계 면접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가른다. 면접 비율은 학교마다 상이하다.
정준구 성균관대 책임입학사정관은 “면접에서 학생부에 담긴 자신의 진로 역량을 잘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지원한 모집 단위에 대한 진정성”이라고 조언했다.
결론적으로 체대 수시 입시에서는 실기 역량보다 자신에게 맞는 전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학생부 관리와 수능 최저기준 충족, 진로와 연계된 선택과목 이수 등 종합적인 준비가 합격의 열쇠가 되고 있다.
◆현직자가 말하는 체대 진로의 다양성 = 체대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실제 체대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활동하는 선배들과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체대 입시의 현실과 준비 방법을 들어봤다.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조혁주씨는 현재 유소년 축구 선수의 경기 실적 관리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러너스’에서 일하고 있다. 조씨는 “정시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어릴 적 축구 선수가 꿈이었기에 서울대 축구부에서 선수로 활동했다”며 “학생 선수 출신이 많아 함께 훈련하고 경기하며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조씨는 “축구에 깊이 몰입하면서 상대 팀 선수들에게도 관심이 갔다”며 “대학 선수들은 어떻게 팀에 입단하는지, 프로에 진출하지 못하면 어떤 길을 가는지 등의 고민이 유소년 축구 선수의 성장 과정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제도적·환경적 요인과 폐쇄적인 스포츠 문화에 문제 의식을 느꼈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 새로운 길에 도전하게 됐다”고 진로 선택 배경을 밝혔다.
조씨는 후배들에게 “체대 입시는 단순히 어떤 전형의 유불리를 살피기 전에 ‘내가 왜 이 길을 가려고 하는가’에 대한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갖는 것이 우선”이라며 “목표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종합전형 합격생의 학교생활 = 경희대 체육학과 1학년 양한울 학생은 충남삼성고에서 종합전형으로 합격했다. 양 학생은 “모교인 충남삼성고는 지역 내 공동 교육과정 거점학교로 인문·자연 계열뿐만 아니라 예술·체육 심화 과목이 다양하게 개설됐다”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지만 입학 당시 진로가 명확하진 않았고 3년간 폭넓은 활동을 경험하며 점차 스포츠와 삶과의 관계에 관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양 학생은 “희망 전공이 확고했기에 수시 6장 모두 체대에 지원했다”며 “전공 적합성과 활동 내용을 중심으로 평가받고 싶었기에 실기보다 서류 평가와 면접 중심 전형에 주력했다”고 전했다. 경희대 체육학과, 이화여대 스포츠과학과, 인하대 스포츠과학과는 종합전형으로, 서울여대 스포츠운동학과는 실기가 있는 교과전형과 종합전형에 각각 지원했다고 한다.
그는 후배들에게 “학생부에 자신이 왜 스포츠 분야를 선택했는지, 어떻게 노력하고 준비했는지가 충분히 드러나야 한다”며 “대학은 이를 바탕으로 대학에서 얼마큼 성장할 수 있는가를 평가한다”고 조언했다.
◆교과전형 합격의 핵심은 내신 관리 = 경희대 체육학과 2학년 곽은철 학생은 서울체육고에서 교과전형으로 합격했다.
곽 학생은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좋아해서 육상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달랐다”며 “주종목인 중장거리 달리기는 최선을 다해도 제 기대에 못 미쳤고 그 무렵 같은 학교에서 학업에 어려움을 느끼는 친구들의 공부를 도우면서 체육 선생님을 꿈꾸게 됐다”고 말했다.
곽 학생은 “평소 주요 과목은 꾸준히 공부해왔기에 비실기 교과전형이 저에게 맞다고 판단했다”며 “이후 내신 성적 관리를 최우선으로 했고 그 결과 내신 평균 1.4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연세대 물리치료학과와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는 종합전형으로, 차의과학대 미래융합원과 가천대 물리치료학과는 교과전형으로 지원했다”며 “경희대 체육학과는 교직 이수가 가능했고 현실적으로 합격 가능성이 높았기에 교과전형과 종합전형 모두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곽 학생은 후배들에게 “체대 실기는 시간과 노력도 필요하지만 기회비용도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며 “어느 정도 타고난 운동신경도 필요하지만 실기고사 당일의 컨디션에 따라 변수가 많고 불확실성도 크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체대 수시 입시에서는 단순한 실기 실력보다 전공에 대한 이해와 진로 의식,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학생부 기록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자신의 강점과 목표에 맞는 전형을 선택하고 체계적으로 준비한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기수 기자·이도연 내일교육 리포터 ldy@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