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쿠폰 재원 마련에 서울 자치구 속앓이
‘신청자 몰리고 상권 꿈틀' 효과 크지만
국비 지원 줄어들면서 자치구 부담 발생
재정자립도 낮을수록 부담액 커져 문제
서울 자치구들이 민생회복 소비쿠폰 흥행 뒤에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23일 정부에 따르면 민생쿠폰은 시작부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신청 첫날에만 698만명이 신청했고 1조2700억원 넘게 지급됐다. 민생 최전선을 담당하는 지자체들은 소비쿠폰 효과에 반색하고 있다. 침체된 골목상권에 활기가 돌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서울 자치구들이 민생쿠폰 흥행을 반기면서도 속앓이를 하는 이유는 갑자기 날라든 청구서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민생쿠폰 지급액을 전액 국비로 충당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와 국회 논의 과정에서 국비와 광역 지자체 간 분담비율이 9대 1로 결정됐다. 이미 추경을 끝낸데다 빠듯한 살림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지자체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서울 자치구들 부담 가중 = 서울 자치구들은 더 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시는 재정자립도가 높다는 이유로 국비 지원액이 타 지자체(90%)보다 낮은 75%로 결정됐다. 여기에 서울시와 자치구 분담 비율이 6대 4로 정해지면서 총액 대비 10%를 자치구가 떠안게 됐다.
갑자기 수십억에서 많게는 140억원까지 만들어야 하게 된 자치구들은 대대적인 사업 축소에 나섰다. 이것만으로 감당되지 않는 부분은 통합재정안정화기금에서 끌어다 써야 하고 만약을 위해 비축해둔 예비비까지 당겨 써야할 형편이다. 기초 지자체는 정부나 서울시와 달리 지방채를 발행한 권한도 없다.
중앙정부에선 “하반기 추경을 통해 부족분을 메울 수 있는데 자치구들이 엄살을 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이는 자치구 예산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얘기”라고 반박한다. 서울 한 자치구 관계자는 “하반기 추경을 하더라도 기초연금 등 국비 매칭 사업에 고정적으로 투입되는 예산이 전체의 60%가 넘는다”며 “고정경비처럼 묶여 있는 예산이 구조적으로 많은 상황이라 재량권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자치구들이 국비 지원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더욱 큰 배경은 ‘양극화 현상’이다. 민생쿠폰은 저소득층일수록 더 많은 돈을 지급 받도록 설계돼 있다. 이렇다보니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이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하는 자치구들은 쿠폰 발행에 따른 부담액이 훌쩍 커진다. 더욱 큰 문제는 저소득층이 많이 있는 자치구들일수록 재정자립도가 낮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서울에서 가장 부자 동네인 강남구의 부담액(144억원)과 재정자립도가 최하위권인 강서구의 부담액(142억원)이 서로 비슷하다. 신흥 부촌으로 부상한 용산구의 부담액은 53억원인데 재정자립도가 용산의 절반에 못 미치는 노원구의 부담액은 131억원에 달한다.
서울 자치구들은 국비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요청한다. 광역과 기초 사이 갈등 요인을 없애고 민생쿠폰 발행 취지에 보다 부합하려면 대통령의 처음 약속대로 국비 100%를 적용해야 하고 만약 조정이 불가피하다면 타 시도와 국·시비 비율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치구 관계자는 “올해와 내년은 민선 8기 사업을 마무리하고 성과를 갈무리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며 “자치구 살림에서 갑자기 수십억원 또는 백억원이 넘는 예산을 마련하려면 사업순위 조정이 아닌 사업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또다른 자치구 관계자는 “민생쿠폰의 소비진작 효과에 대해선 이구동성으로 환영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좋은 사업인 만큼 자치구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에 공감하지만 적어도 9대 1까지는 국·시비 부담 비율이 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