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격노설 위증’ 김계환 구속영장 기각
법원 “도망·증거인멸 염려 없어”
군사법원·국회서 거짓증언 혐의
‘격노’ 부인하다 영장심사서 시인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 중인 순직해병특검팀(이명현 특별검사)이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을 상대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특검팀은 김 전 사령관이 ‘VIP(윤석열 전 대통령) 격노’ 관련 수차례 중대한 위증을 했다며 출범 이후 첫 신병확보에 나섰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수사에 차질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남세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2일 김 전 사령관의 모해위증,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등 혐의 관련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김 전 사령관은 2023년 채 상병 순직 사건 발생 당시 해병대 최고지휘관으로,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키맨’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남세진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경력, 주거 및 가족관계, 수사절차에서의 피의자의 출석 상황 및 진술 태도 등을 고려하면, 도망할 염려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특검팀이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다.
김 전 사령관은 수사 외압 의혹의 발단으로 꼽히는 ‘VIP 격노’를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게 처음 전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사령관은 지난해 2월 군사법원에서 열린 박 대령의 항명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VIP 격노’를 박 대령에게 전달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같은 해 6월 국회 청문회에서도 ‘VIP 격노설’을 부인했다.
특검팀은 김 전 사령관의 이 같은 주장들을 허위로 판단하고 있다. 박 대령의 형사처벌을 의도한 거짓 증언으로 본 것이다.
정민영 특검보는 21일 브리핑에서 “김 전 사령관 증언이 객관적 사실과 다르단 점은 조사를 통해 충분히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특검팀은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을 비롯한 2023년 7월 31일 안보회의 참석자들을 상대로 ‘VIP 격노’를 뒷받침하는 진술을 잇따라 확보했다.
반면 김 전 사령관측은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도주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고, 특검이 조사 과정에서 휴식권을 침해하는 등 위법하게 수사했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채 상병 사건 수사과정에서의 회유, 직권남용’ 등과 관련이 없는 박 대령의 항명죄 재판 사건에서의 위증은 특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김 전 사령관이) 군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연락 내용 등을 종합해 볼 때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상당히 있어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 주장했지만, 법원은 김 전 사령관을 구속 수사할 이유가 부족하다고 봤다.
김 전 사령관은 구속을 피했지만 의혹의 핵심인 ‘VIP 격노설’은 일부 인정했다. 김 전 사령관 측 김영수 변호사는 이날 취재진과 만나 “대통령이 화가 났다는 얘기를 들은 부분에 대해서 인정했다”면서도 “대통령이나 장관으로부터 직접 들은 것은 아니고 소문을 통해 들었기에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누구로부터 어떤 내용을 들었다고 얘기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지난 2일 정식 출범한 이후 수사외압 의혹의 시발점이 된 VIP 격노설 실체 규명에 수사력을 집중해왔다.
특검팀이 의혹의 핵심 인물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신병확보를 시도한 것은 지난 2일 정식 출범 이후 이번이 처음이었다.
특검팀이 처음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김 전 사령관 신병을 확보한 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 윗선 의혹 규명에 속도를 내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다만 특검팀은 이날 김 전 사령관이 ‘VIP 격노설’ 관련 입장을 바꾼 것을 비롯해, 관련자들로부터 수사 외압과 관련한 유의미한 진술을 다수 확보한 만큼 큰 틀에선 수사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팀은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를 면밀히 검토한 뒤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