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86%,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 겸직…독립성 부진
사외이사 출신 의장 4.2% 수준 … 갈 길 먼 지배구조 개선
10대 그룹 중 현대차·롯데 100% … 삼성전자 5년째 분리
국내 상장사 중 86%는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이사가 이사회 수장까지 맡아 스스로 경영을 감독하는 모습으로 이사회 독립성이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사외이사 출신이 의장을 맡는 사례는 4.2% 수준에 그쳤다. 특히 국내 10대 그룹 내 상장사 중 대표이사의 이사회 의장 겸직 비중은 현대차와 롯데그룹이 100%로 가장 높았다. SK그룹의 비중은 가장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의 경우 5년째 사외이사 의장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해외 선진국들, 대표이사와 의장 분리 추세 = 23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지난 6월 말 기준 국내 유가증권 및 코스닥 상장사 2531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는 상장사는 총 2176곳으로 전체의 86%에 달했다. 총수 일가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업체는 169곳(6.7%)이었으며,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한 상장사는 107곳(4.2%)에 그쳤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인지 여부’는 현행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공시제도의 핵심 지표로 활용된다.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으로 있을 때 이사회의 독립성과 투명성이 확보되고, 반대로 대표이사 등 주요 경영진이 이사회 의장을 겸직할 경우에는 이사회가 경영진을 감시·견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이사회는 특정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과 같은 주주환원 정책을 포함한 장기적 관점의 기업가치 제고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인 기업은 기업지배구조보고서 핵심지표(배당정책 사전 통지, 집중투표제 채택 등 15개) 준수율이 더 높다.
이에 해외 선진국에서는 대표이사와 의장을 분리하고 이사회 중심의 독립적 감시체계를 강화하는 추세다. 미국 S&P500 기업의 경우 사외이사 의장 체제 운영 기업 비중이 10년 전 28%에서 최근 39%로 높아지는 등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자산 규모 작을수록 총수 일가 비중 높아 = 대표이사의 이사회 의장 겸임 비중은 자산 규모에 따라 차이가 컸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경우 대표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는 곳은 53.4%(109곳)지만, 자산 5000억원 미만은 90.8%(1766곳)나 됐다. 자산 규모가 작을수록 대표이사의 의장 겸직 여부가 많고 이사회 내 총수일가 비중이 높았다.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은 경우는 적었다.
10대 그룹별로도 차이가 존재했다.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한 상장계열사가 가장 많은 곳은 SK그룹이었다. SK그룹은 20개 상장 계열사 중 15곳(75%)에서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반면 현대차그룹(12곳)과 롯데그룹(10곳)은 상장계열사의 대표이사가 모두 이사회 의장직을 겸하고 있었다. 다만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등 핵심 계열사 3곳은 지난 4월 이사회 거버넌스 강화를 위해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다. 롯데그룹도 지난해 3월 선임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해 별도의 선임 사외이사를 두고 있다.
삼성은 상장계열사 16곳 중 9곳(56.3%)에서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다. 다만, 이사회 독립성과 지배구조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지난 2023년 10월부터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다.
◆책임경영·신속한 의사 결정 vs 이사회 기능 강화 = 최근 국내 기업들 가운데서도 한국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나서면서 사외이사 의장체제를 운영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자, SK, POSCO홀딩스 등이다.
삼성전자는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 사유로 “사내이사들이 경영에 더욱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경영진에 대한 이사회의 견제 기능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2020년 3월 처음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을 선임한 후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대기업은 여전히 창업주나 대표이사가 이사회를 이끈다. 이들은 신속한 의사 결정 등을 주요 이유로 꼽았고, 견제 기구나 장치를 마련해 둬 이사회 독립성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 없이는 이사회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가 주주가치 제고의 출발점이란 분석도 나온다. 독립적인 이사회는 특정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과 같은 주주환원 정책을 포함한 장기적 관점의 기업가치 제고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