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특허주권’ 위해 과감한 결단을
“중국인들이 미국에 보유한 특허와 상표를 조사하고 대책을 강구하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취임 첫날인 1월 20일 서명한 무역정책 행정명령에 포함된 내용이다. 지식재산(IP)이 무역정책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세계에 공포한 셈이다.
3월 16일 트럼프는 특허청장으로 골드만삭스 IP 수석고문 출신인 존 스과이어스를 임명했다. 스과이어스 청장은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첨단산업분야 전문성을 갖춘 특허변호사다. 그는 미국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강한 특허를 만들어 미국산업을 부흥시키고 국가안보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IP를 자국산업의 강력한 보호망으로 삼겠다는 의지다.
미국의 특허정책 기조는 이미 한국기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특허괴물로 불리는 NPE(특허수익화전문회사) 라디언메모리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에 개입했다.
미국 법무부 반독점부서와 특허청을 대표하는 정부측 변호사 10명은 이 소송에 “‘예비금지조치(preliminary injunction)’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 의견서에서는 삼성전자의 주력 SSD 제품들이 특허침해 제품으로 지목됐다. 예비금지조치가 시행되면 해당 제품의 미국수출이 전면 차단된다.
미국정부가 특허를 ‘무역전쟁의 무기’로 활용하는데 우리는 어떠한가. IP는 시장을 독점하기 위한 조치다. 내수시장이 작은 한국기업들이 세계시장을 목표로 한 고품질 IP를 확보해야 한다.
현실은 답답하다. 우리의 특허인프라는 매우 열악하다. 2023년 기준으로 특허심사 1인당 처리건수는 186건으로 주요국 중 가장 많다. 미국(67건) 중국(91건)의 2~3배에 이른다. 심사처리기간도 한국은 16.1개월로 중국(13.2개월) 일본(9.5개월)보다 길다. 1인당 담당기술 분야도 80개로 미국(9개) 중국(6개)보다 턱없이 많다. 특허품질 논란이 지속되는 배경이다.
고품질 IP 확보를 위해 무엇보다 특허심사관 확충이 우선돼야 한다. 심사관에게 충분히 검토하고 분석하는 시간이 주어져야 불량특허가 사라진다. 기업들의 세계시장 진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
다행인 건 별도의 재정을 투입하지 않아도 심사관을 확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특허수수료 중 일부가 매년 국가의 일반회계로 빠져나가고 있다. 10년간에만 약 9672억원에 달한다. 기획재정부가 특허수수료 일부를 매년 일반회계전출금으로 편성하기 때문이다.
특허와 무관한 곳으로 빠져 나가는 수수료로 심사관을 충원하면 된다. 전출금 편성기준도 없이 빼가는 특허수수료를 본래 목적에 맞도록 IP인프라 구축에 사용해야 한다. 이재명정부가 ‘특허주권’을 지키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려주길 기대한다.
김형수 산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