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엔 ‘윤리위’가 없다…브레이크 없는 거대양당 비난·반목
국회의원 자정 의지 사라져 … 최장기간 윤리위 부재
22대 징계요구만 29건 달해, 임기내 100건 넘을 수도
이재명 “조사권 있는 독립적 윤리조사기구 신설” 약속
국회의원 갑질도 강력한 윤리기구서 다루면 ‘예방효과’
22대 국회 임기가 1년 1개월을 넘어서고 있지만 지금껏 윤리특별위원회는 부재 중이다. 여야의 무관심과 힘겨루기의 결과다. 윤리특위가 가동될 때도 ‘징계 없는 윤리특위’라며 ‘무용론’이 일기도 했지만 최근엔 아예 설치하지 않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여야간 징계요구건이 30건에 가까워지는 등 서로 간에 갈등이 더욱 격해지는 분위기다. 자정의지가 사라진 상황에서 더 이상 못 넘을 ‘금도’가 없을 정도다.
25일 국회의장실 핵심관계자는 “국회 윤리특위 설치를 위한 여야간 이견조율이 막판에 와 있다”면서 “가장 큰 쟁점은 여야간 윤리특위 위원 배분 문제”라고 했다.
167석의 민주당은 다른 상임위와 같이 정당이 보유하고 있는 의석수에 따라 윤리특위 위원자리를 나눠야 한다는 입장이고 야당은 여야 동수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윤리특위 위원장을 누가 맡을지도 주요 관심사다.
민주당이 윤리특위 위원장을 맡고 윤리특위의 다수 의석을 확보할 경우엔 ‘의원 징계’를 단독으로 처리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국민의힘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럴 경우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차라리 윤리특위 없이 공전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볼 여지가 많다. 국회의장과 여당의 윤리특위 설치에 적극적이면서도 지금껏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전날 여가부장관후보자의 명패를 뗀 강선우 의원의 ‘보좌진 갑질’에 대해 국민의힘의 징계요구안 제출을 놓고 여야가 설전을 펼쳤지만 윤리위가 없어 논의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에 대해 징계를 요구하는 60만명 이상의 국민동의청원도 윤리특위가 없어 상임위 배정을 받지 못하고 길을 헤매고 있다.
윤리특위는 1987년 민주화 운동 직후인 1991년에 상설기구로 신설됐지만 2018년 20대 국회 후반기부터 비상설 상임위로 전환되면서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비상설 상임위는 여야의 합의에 따라 운영기간을 정하는데 합의에 실패하면 특위 구성이 무산된다. 이에 따라 2019년 6월말~2020년 5월말까지 거의 1년 동안 가동을 멈췄고 21대 국회 후반기에도 2022년 6월말 이후 여야가 연장하지 않아 11월까지 운영을 중단했다. 22대 국회는 윤리위 없이 전반기를 시작해 벌써 1년을 넘겼다. 윤리특위 가동중지 기간으로만 따지만 최장기간이다.
하지만 거대양당의 상대당 의원에 대한 징계안은 끊임없이 올라왔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징계요구안은 19대 39건, 20대 47건, 21대 51건으로 증가하더니 22대 들어서는 1년1개월만에 29건의 징계안이 올라왔다. 이 속도라면 4년간 100건을 돌파할 수도 있다.
문제는 윤리위를 설치한다고 모두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윤리위가 제대로 가동하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윤리위에서는 최근까지 징계안을 거의 논의조차 하지 않았고 실제로 낮은 수준의 징계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 지금껏 34년동안 국회 윤리특위에서 통과시킨 징계안은 2건(18대 국회 강용석, 19대 국회 심학봉 의원)에 그쳤다. 2010년 윤리심사자문위가 구성돼 징계안에 대한 권고를 내고 있지만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윤리특위를 신속히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윤리심사자문위의 권한을 강화하고 윤리심사자문위의 권고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시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공약질의에 ‘국회 윤리특위와 별도로 독립적인 윤리조사기구를 신설하고 조사권과 징계 요구권을 부여해 실효성 있는 국회의원 징계제도를 도입’하는 데에 동의하는 입장을 내놨다. 경실련은 국정기획위원회에도 “외부 전문가와 시민사회 인사가 참여하는 독립 윤리조사기구(윤리조사국)를 신설하고, 조사 및 징계요구권을 부여해야 한다”며 “윤리특위 역시 실질적인 감시 기능을 갖춘 조직으로 재편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또 “윤리조사국의 징계 권고가 국회 본회의 표결 없이 자동 확정되도록 하고, 징계 당사자가 표결에 참여할 수 없도록 의결권을 배제하는 방식의 실효성 확보 장치도 헌법 및 국회법 개정을 통해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강 의원 탓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의원 갑질 등 국회내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윤리위 등이 제대로 가동되면 예방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편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국회의원들이 잘못하면 징계도 하고 잘못에 대한 판단도 해야 될 텐데 윤리특위를 못 만들었다”면서 “제일 답답하고 국회의장으로서도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