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과 기술의 경계에서 기회를 읽다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 중 … 기술패권의 최전선, 대만이라는 ‘칩 요새’
대만은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로 불렸으나 지금은 그 이름보다 더 큰 존재감을 갖고 있다. 세계경제가 혼란에 빠지고 지정학적 갈등이 첨예해질수록 대만은 하나의 ‘산업 심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바로 ‘반도체’가 있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에서 강자라면 대만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파운드리 국가’다. 특히 TSMC는 올해 1분기 기준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67.6% 를 점유하며 애플 엔비디아 어드밴스드마이크로디바이시스(AMD) 퀄컴 등 미국 빅테크의 칩 설계 의존도를 모두 끌어안은 구조를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단순한 공급망 분석을 넘어, ‘대만 반도체 산업이 만들어내는 세계질서의 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 섹터에 배정하려는 기관이라면 단기 밸류에이션이 아니라 ‘구조적 기회’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대만 '세계 최강의 파운드리 국가'
지금 세계는 반도체 전쟁 중이다. 미국은 ‘칩스법(CHIPS Act)’를 통해 자국 반도체 산업의 부흥을 꾀하고 있으며 중국은 ‘자력갱생형’ 국산화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 틈에서 대만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고도 그만큼 독보적인 기술력과 공급 우위를 보유하고 있다.
TSMC는 3nm 이하 초미세 공정에서 세계 초일류의 상용화 기술을 확보해 애플의 A시리즈 칩이나 엔비디아의 AI용 GPU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히 ‘시장 점유율’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산업의 심장을 쥐고 있는 구조다. 이는 대만의 ‘기술주권’이 미국조차 함부로 대체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불가결한 위치’가 대만을 지정학의 리스크로 내몰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대만 반도체에 전략적으로 의존한다. ‘누가 통제권을 갖느냐’는 싸움이 본질이다. 우리는 이 리스크를 단기 위협이 아닌 ‘구조적 지렛대’로 볼 필요가 있다. 대만의 리스크는 오히려 그 산업의 중요성과 대체 불가능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많은 투자자들은 TSMC만 바라보지만, 대만의 저력은 그 생태계 전체에 있다. 유나이티드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UMC), 벵가드인터내셔널세미콘덕터(VIS), 에이에스이(ASE Group), 미디어텍(MediaTek), 리얼텍(Realtek) 등은 각각 파운드리 패키징 팹리스 등에서 탄탄한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어 ASE는 세계 1위의 패키징·테스트 업체로 파운드리와 팹리스 사이에서 공급망 완결성을 높인다. MediaTek은 저전력 시스템온칩(SoC) 분야에서 세계 2위의 모바일 칩 설계사로 인도 중동 등 신흥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폭넓은 점유율을 갖는다.
특히 전기차용 모터제어기(MCU), AI 추론칩, 산업용 센서 등의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대만의 중견 팹리스·설계 기업은 ‘중간 밸류 구간’에서 구조적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시가총액 2조~10조원 사이의 기업군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대만 반도체 생태계의 저력
대만 반도체에 대한 투자는 단순 수익률이 아닌 ‘산업 레버리지 확보’여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첫째는 기술 역량이 있으나 저평가된 중견 팹리스 기업들이다. MediaTek,노바텍(Novatek), Realtek 등은 미국 비교기업 대비 20~40% 저평가 상태다. 애플·엔비디아 공급망 의존 기업을 중심으로 기술난이도 대비 높은 자기자본이익률(ROE)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중 MediaTek은 대만의 팹리스 기업으로 스마트폰 AP(모바일 칩)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2022년 1분기 38%, 2024년 1분기 31%)를 차지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AI 대중화를 위한 협력을 통해 CPU를 공동 개발하는 등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둘째는 파운드리 후방, 테스트·패키징 기업이다. ASE 테크놀로지, 파워테크 테크놀로지(PTI) 등은 반도체 공급망 병목 현상이 발생할 때마다 수혜가 가능할 수 있다. 이들은 미국·일본의 기술이전 없이도 독자적 공정 역량 축적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 및 IDC에 따르면 ASE는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OSAT) 분야에서 세계 최대 공급업체로 시장 점유율 19% (가트너), 27.6% (IDC), 42% (유진투자증권) 등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1위이다.
셋째는 중국과의 지정학 마찰 속에서도 ‘미국 승인’을 받은 기업이다. TSMC는 애리조나 팹 착공 외에도 미 국방부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에 기반해 미국 기업으로의 우회 투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공포’는 언제나 최고의 기회였다
지정학은 단기적 리스크 요인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구조를 바꾸는 촉매’다. 지금 대만에 대해 투자자들이 갖는 우려는 ①중국의 군사적 위협, ②공급망 분절, ③미국 내 반도체 자립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우려 모두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오히려 ‘기회’를 만들고 있다. 중국의 위협은 TSMC와 그 협력기업의 기술 보호와 보상 구조 강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공급망 분절은 오히려 해외 기업이 대만에 기술 의존을 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미국의 자립은 현실적으로 TSMC와 삼성전자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목표다.
반도체는 더 이상 기술기업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 안보 외교 군사 교육 의료 에너지까지 영향을 미치는 전방위적 전략무기다. 대만은 그 무기를 손에 쥔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이고 한국은 바로 그 옆에 있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누군가는 대만의 리스크를 피하겠지만 진짜 기회는 늘 불확실성의 한복판에서 만들어진다. 대만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기술 베팅을 넘어 향후 10년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구조적 성장을 선점하는 전략적 행위이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 기업에 대한 집중 투자가 효과적일수 있다.
첫째는 TSMC(2330.TW)다.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60%를 상회하는 절대 강자로서 애플 엔비디아 AMD 등 세계 주요 반도체 수요기업들의 핵심 파트너다. 특히 3나노, 2나노 초미세 공정 기술에 있어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이는 향후 AI, 고성능 컴퓨팅, 자율주행 분야에서의 지속적 매출 성장 기반이 된다.
둘째는 반도체 후공정 분야의 글로벌 강자인 ASE Technology Holding(3711.TW)이다. 패키징과 테스트 등 후공정 전문 기업으로, 엔비디아의 AI GPU 패키징 부문 핵심 협력사이자 SiP(System-in-Package) 기술을 전장·통신·의료 산업에까지 확장하고 있다. 단순 가격 민감 업종이라는 기존 인식과 달리 인공지능(AI )시대에는 고부가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수익성과 성장성이 함께 개선되고 있다. 특히 미국 고객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점은 미중갈등 국면에서 매력적인 방어 요인이 된다.
셋째는 글로벌 실리콘 웨이퍼 시장에서 점유율 3위를 기록 중인 글로벌웨이퍼스(GlobalWafers, 6488.TW)다. 이 기업은 1959년부터 웨이퍼 기술 설계 및 개발 분야의 선구자였으며 미국 유럽 및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300mm 고순도 웨이퍼의 기술 내재화에 성공한 기업으로 현재 EU 및 미국에 현지 공장을 증설하며 고객사를 분산 확보 중이다.
특히 반도체 전공정의 핵심 소재로서 수요가 지속 증가하고 있으며 일본의 섬코(SUMCO) 등 경쟁사 대비 저평가 상태인 것도 투자 매력도를 높인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소재 자립이 강조되는 현재의 산업 구조를 고려할 때 웨이퍼 분야는 단순 경기민감 섹터를 넘어선 전략적 투자처로 분류할 수 있다.
반도체는 산업이자 ‘전략 무기'
결론적으로 대만 반도체기업에 대한 투자자금은 단순한 주식 거래 이상의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공급망 재편, AI 패러다임, 지정학 리스크, 산업 내 밸류체인 전환 등 다중 변수 속에서 대만 반도체 산업은 가장 정교한 대응을 선보이는 지역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술’이 아닌 ‘위치’를 보는 일이다. 위치가 투자정답인 때 대만은 여전히 정답이다.
중국증권행정연구원 원장
미국 어바인대(UI)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