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디올의 LVMH, 명품 왕국의 시련기
에르메스에 1위 자리 내주자
투자자들, 기업분할 요구
세계 최대 명품그룹 LVMH가 위기를 맞고 있다. 루이비통, 디올, 모엣샹동 등 75개 브랜드를 거느리며 지난해 850억유로(약 138조원)의 매출을 올린 이 그룹은 올해 상반기 매출이 전년 대비 4%, 순이익은 22% 감소했다고 2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과 미국 등 핵심 시장에서 소비자 지출이 줄어들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LVMH를 이끄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명품업계에서 “규모의 경제”를 처음 실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광고주, 부동산 임대업자, 공급업체와의 협상력은 물론 인재 유치와 유지 측면에서도 대규모 운영의 이점을 간파했다. 2019년 티파니, 2018년 벨몬드 호텔 체인, 2016년 리모와 등 대규모 인수합병을 통해 제국을 키웠고, 한때 시가총액이 4500억유로에 달하며 아르노 회장은 세계 최고 부자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보복 소비’ 흐름에 편승해 지나치게 가격을 인상한 점이 소비자의 반감을 샀다. HSBC에 따르면 루이비통의 대표 가방 ‘스피디 30’은 2019년 이후 가격이 두 배 이상 뛰었다. 같은 기간 유럽 내 평균 명품 가격 상승률이 50%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과도한 인상이었다.
여기에 최근 몇 년간 브랜드 신뢰를 해치는 논란도 이어졌다. 모엣헤네시는 전직 직원들로부터 성희롱, 괴롭힘, 부당 해고 혐의로 고발당했다. 이탈리아 법원은 지난 14일 LVMH의 고급 캐시미어 브랜드 로로피아나를 노동권 침해 혐의로 외부감독관을 임명해 회사운영을 감시하는 '사법관리' 조치를 내렸다. 이에 대해 LVMH는 “투명성과 통제, 생태계 관리가 때로는 어려울 수 있다”고 해명했지만, 시장에서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LVMH의 시가총액은 지난 1년간 25% 이상 하락해 2500억유로 미만으로 떨어졌다. 반면 아르노 회장이 인수에 실패했던 에르메스가 명품업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에르메스는 지난해 매출이 150억유로에 불과했지만, 높은 이익률과 초고가 전략 덕분에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기업 분할을 요구하고 있다. 25일에는 LVMH가 자회사 마크 제이콥스의 매각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더 근본적인 해법으로 모엣헤네시 같은 부진한 주류 사업부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로 모엣헤네시는 최근 수익성 악화로 수천 명을 감원했으며, 전체 영업이익 중 기여도는 10% 미만으로 줄었다. 분석가들은 “젊은 세대가 코냑 같은 전통적인 증류주보다 가벼운 대체 음료를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LVMH가 경쟁사 에르메스에 비해 저평가받는 것도 분할 요구에 힘을 실어준다. 에르메스는 철저히 최고급 시장에 집중하며 시장가치가 오히려 상승했고,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면 루이비통 단독으로도 현재 LVMH 전체보다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아르노 회장의 후계 구도 역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76세인 그는 올해 CEO 정년을 85세로 다시 연장했지만, 다섯 자녀 모두 그룹 내 다양한 부문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장녀 델핀은 디올 CEO로, 아들 알렉상드르는 모엣헤네시 부대표, 프레데릭은 로로피아나 수장으로 활동 중이다. 그럼에도 아르노 회장은 승계 관련 질문에 입을 열지 않고 있으며, 시장에서는 회사를 안정시킨 뒤에야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