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낮은 경호’와 이 대통령의 안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용산 구내매점에서 출입기자들과 조우했을 때의 일이다. ‘깜짝 미팅’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일부는 이 대통령에게 다가가 명함을 내밀었다고 한다. 경호관이 접근을 막아서자 이 대통령은 오히려 경호관을 제지하고 직접 명함을 받으며 인사를 나눴다는 게 현장기자의 전언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낮은 경호’를 표방하고 있다. 모터케이드(경호·의전을 위한 자동차 행렬)를 줄이고 출퇴근길 교통신호도 지킨다. ‘타운홀미팅’ 행사에서는 참석자들과 눈높이를 맞춰 가까이 앉는다.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같은 경호 기조가 이어질 예정이다.
반응은 호의적이다. ‘입틀막’ ‘체포영장 집행 저지’ 경호를 선보인 직전 정권 덕에 대비효과가 더 큰 것 같다. 하지만 마냥 좋아라할 일 만은 아니다.
대통령 경호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유세 중 흉탄이 귀를 스쳤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사제 총기에 목숨을 잃었다. 이 대통령 자신도 지난해 2월 부산에서 괴한의 흉기에 목을 다친 피해자다. 한국에서 총기 제작·살인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 정치혐오 등으로 인한 이상동기 범죄가 부쩍 자주 목격된다는 점은 특히 경계할 만하다.
전문가들은 ‘낮은 경호’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를 지속하는 데는 입을 모아 우려스럽다고 말한다. 경호차량을 멈추면 대통령이 저격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고, 사전 파악되지 않은 불특정 인원이 많을수록 돌발상황에 따른 위험도 커진다는 건 상식이다.
언론·유튜브 등 각종 미디어도 대통령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자리잡았다. 일부 매체는 지난달 26일 이 대통령의 만찬 일정을 예고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대통령이 “27일 저녁” 주요 언론사 대표들과 “관저”(한남동)에서 만찬 간담회를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역대 정부는 대통령 안전을 위해 외부 일정을 ‘포괄적 엠바고’ 사안으로 유지해왔는데 이날 보도는 이를 정면으로 위반, 날짜·시간대·장소까지 명시했다. 사실상 대통령의 동선을 그대로 노출시킨 셈이다.
그런데 해당 매체에 대해 대통령실이 어떤 조치를 취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만약 보도를 묵인했다면 책임을 물을 일이고, 문제를 못 느끼고 있다면 앞으로가 걱정이다.
한편 이 대통령이 ‘용산시대’를 끝내고 청와대로 돌아가기로 한 것은 경호 관점에서 바람직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뿔뿔이 흩어졌던 대통령의 업무·생활·대외행사 공간을 모두 청와대 경내에 모으면 외부동선이 현저히 줄어들 전망이다. 안전하면서 낮은 경호는 없다.
이재걸 기획특집팀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