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주주뿐만 아니라 채권자 보호에도 긍정적 영향
기업 거버넌스 개선으로 투명성 강화 … 신용도 ↑
주주와 채권자 사이 이해 상충 발생 가능성 높아져
“재무 건전성 유지하며 주주 친화적 경영 병행해야”
‘이사의 충실의무 강화’를 골자로 하는 개정 상법이 지난 22일 공포·시행됐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포함한 2차 상법 개정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외 신용평가사들은 이번 상법 개정으로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가 개선되면서 주주뿐만 아니라 채권자 이익 보호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주주와 채권자 사이에 이해 상충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이에 신용평가 전문가들은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며 주주 친화적 경영이 병행되는지가 신용도 방향성을 좌우하는 변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액주주 이익 보호, 채권자 이익에 불리? = 29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최근 ‘소액주주 이익 보호’에 초점을 맞춰 개정된 상법이 채권자에게는 불리한 요인이라고 주장이 나왔다. 신용평가의 관점에서도 기업의 의사결정으로 인해 채권자의 이익이 침해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신용도 저하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김경무 한국기업평가 실장은 “상법 개정을 통한 주주 친화적 경영으로 기업 가치 제고와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여건 개선이 기대된다는 점은 신용평가에도 긍정적”이라면서 “반면 주주환원에 초점을 맞춘 재무전략(배당 확대, 유상증자 위축, 자사주 소각 등) 추진은 재무위험 측면에서 신용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에 자금을 빌려준 채권자 관점에서는 △배당 확대 △유상증자 위축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이 이익을 침해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하는 등 주주와 채권자 사이 이해 상충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배당 확대는 주주와 채권자의 이익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대표적인 재무활동이다. 신평사들은 부채비율, 차입금의존도 등의 레버리지 지표를 재무항목 평가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사모펀드로 지배구조가 변경된 기업의 재무정책 변화는 배당 확대로 인한 신용위험 증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김 실장은 “인수금융 차입금 상환 또는 정해진 투자 기간 내 투자금 회수를 위해 고배당 정책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 이로 인한 재무위험 증가로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유상증자 또한 채권자와 주주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사안이다. 채권자는 유상증자로 자본이 확충되어 재무안정성이 제고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발행주식 수 증가에 따른 주가 희석을 우려하여 유상증자에 부정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사주 소각에 대해서도 주주와 채권자의 입장 차이가 분명하다. 현재 국회에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포함한 상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된 상태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이유는 매입한 자사주를 장기간 보유함으로써 자사주 매입의 본래 취지인 주주가치 제고 효과는 미흡한 반면 경영권 방어 또는 불공정 거래에 활용되는 문제가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입한 자사주를 일정 기간 내에 소각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실질적인 주주환원이 이루어지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김 실장은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매입한 자사주의 소각이 실행됨으로써 실질적인 주주환원이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며 “반면 신용평가의 측면에서는 자사주 소각 여부와 무관하게 자기자본 감소에 따른 재무구조 저하가 나타나는 자사주 매입 시점에 부정적인 평가요인으로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투자자 기반 확대로 기업 경쟁력 강화·자본비용 감소 = 반면 한국신용평가는 ‘채권자 관점에서 본 상법 개정’이라는 보고서에서 “지배구조 개선은 소수 주주뿐만 아니라 채권자의 이익 보호에도 긍정적”이라며 “이사회의 독립성과 경영 투명성 제고는 기업 경쟁력과 지속가능성 강화로 이어지고, 이는 결과적으로 기업의 신용도와 자본시장 접근성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최형욱 한국신용평가 실장은 “주주친화적인 경영 및 재무 전략으로의 변화가 채권자지위를 약화시킬 수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정수준의 재무건전성이 유지되는 가운데에 이루어지는 주주 친화적인 경영은 기업가치 제고를 통한 자금조달능력 향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도 가능해 성장과 분배의 지속가능성 관점에서의 합리적 경영의사결정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것이 채권자 입장에서 바라는 기업행태 변화라는 주장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 또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도입하는 한국의 상법 개정이 기업 신용도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무디스는 “이사의 수탁자 의무와 독립성 강화는 합병과 인수, 자산 매각 등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감독을 개선해 지배주주에게만 이익이 되는 갑작스러운 조치나 특수관계자 거래의 위험을 줄일 것”이라며 “이 같은 변화가 한국 기업들의 자본시장 접근성을 장기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무디스는 “지배주주에 편중된 한국의 기업 거버넌스 관행은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요인이었다”며 “투명성과 투자자 보호가 강화되면 투자자 기반이 확대돼 궁극적으로 거버넌스가 좋은 기업의 자본비용이 감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상법 개정 방향이 소액주주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기업의 경영 의사결정이 채권자보다 주주이익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주주 이익에 치우친 의사결정이 지속되는 경우 채권 투자자의 신뢰 저하로 자본시장 접근성 측면에서 부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채권 발행시 조달 비용 상승과 함께 채권자 이익 보호를 위한 강력한 특약 요구로 이어져 조달 여건이 악화되는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며 “채권자 이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