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농도 측정 안한 맨홀 작업자 또 사망
이 대통령 ‘특단 조치’ 지시에도 3주만에 질식 사고 재발
서울 금천구 상수도 공사 현장서 1명 사망, 1명 의식불명
숨쉬기도 어려운 찜통 더위에도 맨홀 안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2명이 질식해 그중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천 맨홀 사고’로 노동자 2명이 숨진 뒤 이재명 대통령이 ‘일터의 죽음을 멈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한지 약 3주만에 유사한 사고가 또 발생한 것이다. 경찰과 노동당국은 당시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조사하고 있다.
28일 서울 금천소방서와 금천경찰서에 따르면 27일 낮 12시 39분쯤 금천구 가산동 상수도 누수 공사 현장에서 작업하던 70대 남성 2명이 질식해 쓰러졌다. 이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심정지 상태였으며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에 이송됐다. 하지만 이날 오전 3시쯤 1명이 숨지고 다른 1명도 의식이 없는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밀폐 공간 작업자는 작업 전 산소 농도를 측정하고 공기호흡기 등 안전보호구를 착용하게 돼 있다. 하지만 사고 현장에서는 작업전 산소 농도 측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작업자들도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직후 소방 당국이 측정한 맨홀 내부 산소농도는 4.5% 미만으로 질식 위험이 큰 상태였다.
통상 대기 중 산소 농도는 21% 수준이다. 산소 농도가 18% 미만으로 떨어지면 민감한 사람의 경우 두통을 느끼는 등 산소 결핍증을 일으킨다. 15% 수준으로 떨어지면 현기증이 나고 시력이 저하되며, 호흡수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12% 미만이 되면 단시간만 노출되어도 위험해지며 의식을 잃을 수 있고 7% 이하면 6분 이내에 사망한다.
이번 공사을 발주한 서울아리수본부는 누수 복구 작업을 하던 중에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사고 경위 등을 파악하고 있다.
서울아리수본부 관계자는 “사고 직후 현장에서 만난 직원들이 경황이 없어 경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현재는 현장직원들에 대한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등 재발방지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작업 과정에서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을 수사하고 있다.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과실치시상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고용노동부도 사고 조사에 착수해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최근 맨홀과 같이 밀폐된 공간에서의 작업 중 질식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일 인천 계양구에서 하수관로 현황 조사를 위해 맨홀에 들어간 업체 대표와 일용직 근로자가 질식해 숨졌다. 23일에는 경기 평택에서 맨홀 안 청소를 하던 작업자 2명이 의식 저하로 쓰러졌다 구조됐다.
폭염으로 인해 고온 상태인 맨홀 내 산소 농도가 급격히 낮아지고, 특히 하수관에서는 유해가스가 다량 발생하면서 질식 위험이 커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금천구에서 사고가 발생한 27일 서울 낮 기온은 38도에 달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국 48개 지방관서장에게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이면 야외작업을 중단하거나, 작업 시간대를 조정하도록 지도할 것을 지시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지난해만 질식사고 재해자는 29명으로, 이중 12명이 사망했다”며 “밀폐공간 작업 시 사전에 송기마스크 착용, 유해가스 측정 의무가 확실하게 지켜질 수 있도록 필요한 산업안전보건규칙을 조속히 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지난 7일 인천의 한 도로 맨홀에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와 관련해 “일터의 죽음을 멈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이 최근 산업재해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같은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지 철저히 밝히고, 중대재해처벌법 등 관련 법령의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조치를 취하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이 수석은 설명했다.
장세풍·한남진·이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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