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영혼이 죽은 공무원 사회를 살리려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을 외치며 기존 권위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는 결국 학교에서 쫓겨났다. 진실을 말하고 소신을 지킨 죄로. 마지막 수업에서 학생들이 책상 위에 올라서며 그에게 보낸 경의는 감동적이었지만 현실의 벽은 냉혹했다.
2025년 대한민국 공직사회도 마찬가지다. 소신 있게 일하려는 공무원은 설 자리가 없고 거짓말과 책임회피가 생존의 기술이 됐다. 교육부 출입기자로서 최근 목격한 이진숙 장관 후보자 청문회 대응은 그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줬다.
포스트잇으로 전수된 ‘거짓말 기술’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교육부 청문회 준비단이 이진숙 후보자에게 “동문서답하라” “즉답 피하라”는 지침이 적힌 포스트잇을 전달하는 모습 말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 지원을 넘어 국민과 국회 앞에서 진실을 숨기고 책임을 회피하도록 조직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그것도 교육을 담당하는 부처가 ‘회피의 기술’을 가르치고 있었던 셈이다.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사고하고 진실을 말하라고 가르친 키팅 선생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런 거짓말 문화는 윤석열정부 3년간 공직사회 전반에 뿌리내렸다. 2006년 기자가 검찰 출입 시절만 해도 검사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말하기 곤란하면 “말할 수 없다”거나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의 자존심과 윤리의식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정부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명태균게이트 수사 은폐부터 12.3 비상계엄 관련 허위진술까지 이제 검찰은 “사실이 아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수사에서는 “압수수색을 했다”고 공식 브리핑했지만 실제로는 영장청구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윤 전 대통령부터 그랬다. “최소한의 병력 투입” “국회의원 출입 금지 지시 불가”라고 했지만 법정과 수사기록 앞에서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인데 최고 권력자가 거짓말을 일상화하니 공직사회가 어떻게 맑을 수 있을까.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 보여준 행정문화가 그 가능성을 제시한다. 청정계곡 복원사업이 대표적이다. 수십년 간 방치된 불법시설물 철거라는 민감한 업무를 앞두고 이 지사는 공무원들에게 “법과 원칙대로 일하되, 책임은 내가 진다”고 약속했다. 공무원들은 기존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섰고 99%라는 놀라운 복원률을 달성했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는 전국 최초로 재난기본소득을 단 15일 만에 설계하고 집행했다. 선례가 없는 업무였지만 “최종 책임은 도지사가 진다”는 확신 속에서 공무원들은 창의적 해법을 찾아냈다.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했듯이 이 지사는 공무원들에게 “지금 이 일을 제대로 하라”고 격려했다. 그리고 성과를 낸 공무원 전원에게 포상과 유급휴가를 지급하며 노고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이재명정부에서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공무원들이 다시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법과 원칙대로 일하되, 책임은 윗선이 진다”는 원칙이 확립돼야 한다. 윤석열정부의 AI디지털교과서가 좋은 반면교사다. 국회 입법 과정도 거치지 않고 대통령령만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현장은 추진력을 잃었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문제점을 알면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책임을 피해 자리를 옮기기에 바빴다.
공무원들 또한 창의적 해법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일을 하다 보면 실수도 생기고 시행착오도 따르기 마련이다. ‘접시를 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 그것이야말로 적극 행정의 출발점이다. 아울러 성과를 낸 공무원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격려가 뒤따라야 한다. 소신껏 일한 공무원이 인정받고 존경받는 조직이어야 다른 이들도 용기를 낼 수 있다.
책임회피 아닌 소신으로 일하는 문화를
이제 이재명정부가 ‘영혼이 죽은 공무원의 사회’를 되살려야 할 때다. 거짓말이 아닌 진실로, 책임회피가 아닌 소신으로, 충성이 아닌 원칙으로 일하는 공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키팅 선생의 “카르페 디엠”처럼 공무원들도 “지금 이 일을 올바르게 하라”는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다시 정부를 신뢰하고 공무원들도 자긍심을 되찾을 수 있다. 영혼이 살아 있는 공무원의 사회, 그것이 바로 이재명정부가 만들어야 할 진짜 새로운 대한민국이다.
김기수 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