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슨 746억원 배상, 구상권 청구할까

2025-07-30 13:00:03 게재

‘삼성 합병으로 손해’ 배상금·지연이자 혈세로 지급

“박근혜·이재용에 구상권” 목소리 … 정부, 검토 나서

한국 정부가 삼성 합병과 관련해 미국 사모펀드 메이슨에 700억원대의 배상금을 지급함에 따라 구상권 청구에 나설지 주목된다.

30일 정부에 따르면 국무조정실과 기획재정부·법무부·보건복지부 등이 참여하는 국제투자분쟁대응단은 메이슨에 배상한 746억원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법무부는 전날 삼성 합병으로 손해를 본 메이슨에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는 국제투자분쟁(ISDS) 결과에 따라 메이슨에 총 746억원을 지급했다고 밝힌 바 있다.

메이슨에 지급한 배상금은 원천징수 158억원을 제외한 액수다. 배상금을 받은 메이슨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집행 소송을 취하했다.

옛 삼성물산 주주인 메이슨은 2015년 삼성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해 손해를 봤다며 2018년 9월 ISDS를 제기했다.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에 압력을 넣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한 결과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주가가 하락하면서 약 2억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메이슨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한국 정부에 배상금 3200만달러와 지연 이자(2015년 7월 17일부터 연 5% 복리)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지난해 7월 중재지인 싱가포르 법원에 중재판정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올해 3월 기각 결정을 내렸고, 4월 정부가 항소를 포기하면서 배상액이 확정됐다.

이후 정부는 메이슨측과 배상금 지급을 위한 협상을 진행해 158억원의 세금을 원천 징수한 뒤 746억원을 배상금으로 지급했고, 메이슨은 미국 법원에 제소한 한국 정부 상대 집행소송을 취하했다.

정부는 국제투자분쟁 배상금에 대한 정당한 과세권을 실현하고 자칫 국유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으로 비화될 수 있었던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국민 혈세로 수백억원의 배상금을 물어줬다는 점에서 구상권 청구 필요성이 제기된다. 구상권은 다른 사람을 대신해 손해나 비용을 부담한 사람이 진짜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이를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권리다.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성 합병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국제소송 패소로 손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국민연금도 막대한 손실을 봤다”며 “합병 관련 불법 행위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상권 청구 대상으로는 합병을 주도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꼽힌다.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인 송기호 대통령실 경제안보비서관은 지난 4월 메이슨에 대한 배상책임이 확정되자 “국가 예산 손해를 초래한 박 전 대통령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한 공동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었다.

참여연대도 입장문을 내고 “왜 국민 세금으로 메이슨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하나.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회장 등 형사 유죄가 확정된 이들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은 삼성 합병 과정에서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묵시적 청탁’을 받고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2019년 8월 유죄가 확정된 바 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이 회장은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각각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다만 대법원은 지난 17일 이 회장의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확정했다.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지만 실제 재판 단계에서 구상권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가간 배상에서는 과실 공무원의 책임을 묻기가 용이하지만 기업 투자와 관련한 ISDS에서 패소했다고 곧바로 공무원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구상권 청구가 가능한지, 청구한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해야하는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ISDS와 국내법이 다르고, 대법원 판결이 충돌하는 부분도 있어 복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 합병으로 손해를 봤다며 제기한 ISDS는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한국 정부는 2023년 PCA가 한국 정부에 약 130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자 PCA의 재판 관할권을 문제삼아 중재지인 영국 고등법원에 취소소송을 낸 바 있다. 영국 고등법원은 이를 각하했으나 정부는 항소를 제기했고, 영국 항소심 법원은 최근 고등법원이 선고한 각하 판결을 파기하고 본안 판단을 위해 사건을 돌려보냈다. 영국 법원이 PCA의 관할권이 없다고 판단하면 정부의 배상 책임은 사라지지만 관할권을 인정하면 1300여억원을 국민 세금으로 물어줘야 해 다시 구상권 청구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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