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룰라, 관세놓고 정면충돌

2025-07-31 13:00:01 게재

미국, 브라질에 50% 관세 … 브라질 재무 “트럼프에 꼬리치지 않을 것”

지난 10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시위대가 브라질 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묘사한 의상과 가면을 착용한 채 트럼프 대통령의 브라질산 제품에 대한 50% 관세 발표에 항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브라질산 수입품에 대해 50%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브라질과의 외교 관계가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백악관은 3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발표하며 기존 10% 관세에 40%를 추가해 총 50%의 관세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따라 내려진 조치로 브라질 정부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이유로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9일 브라질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에게 ‘관세 서한’을 보내 보우소나루에 대한 재판을 “국제적 불명예”, “마녀사냥”으로 규정하고 고율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백악관은 브라질 정부가 미국의 표현의 자유, 외교정책, 경제에 위협을 가하는 “이례적이고 이상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미 재무부는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쿠데타 모의 혐의 사건을 담당한 브라질 연방대법관 알레샨드리 지모라이스에 대한 제재도 발표했다. 브라질 법무부는 “사법부에 대한 노골적인 협박이자 정당화될 수 없는 조치”라고 즉각 반발했다.

브라질 정부는 미국의 조치가 무역보다 정치적 의도가 짙다고 판단하고 있다. 호제리우 세론 브라질 국가재무처 국고청장은 현지 언론에 “정치적 압박이 담긴 조치이며, 대응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항공기 부품, 석유, 오렌지 주스 등 일부 전략 품목은 관세 예외를 적용받았지만 브라질 언론은 수출 감소와 고용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트럼프 정부의 ‘무역 압박’에는 단호하게 맞설 뜻을 밝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그는 “트럼프는 2억여 명의 브라질인을 상대로 관세를 무기로 협박하고 있다”며 “문명국가 사이에는 대화가 우선돼야지, 위협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연설에서는 ‘브라질은 브라질 국민의 것’이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트럼프를 ‘그링고(Gringo: 미국인을 경멸하거나 낮춰 부르는 표현)’라고 지칭하며 정서적 반감을 표출했다.

페르난두 아다지 재무장관도 “우리는 트럼프에게 보우소나루처럼 꼬리를 흔들지 않을 것”이라며 “그에게 ‘아이 러브 유’ 같은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룰라 정부가 이번 사태를 단순한 무역 갈등이 아닌 정치적 주권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라질은 보복 관세나 외교 압박 등 다양한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

브라질은 현재 미국과의 교역에서 구조적 적자다. 브라질 정부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누적된 대미 무역적자는 약 902억달러(약 124조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관세 조치가 브라질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브라질 외교·경제 관계자들은 미국의 교역 비중이 과거보다 줄어든 만큼 과거보다 유연하고 주체적인 대응이 가능하다고 본다.

브라질의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룰라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국제 무대에서도 ‘독립적 외교’ 노선을 재확인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브라질은 전통적으로 자주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외교정책을 펼쳐 왔으며 이번 트럼프의 고율 관세 부과는 그 기조를 더욱 공고히 다질 가능성이 크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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