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과잉투자 늪에 빠지다…근본은 내수 부족
설비 증설로 경쟁만 치열 정부 민간기업 개입엔 한계
중국 지방정부가 ‘고급 제조업’ 전환을 내세우며 대규모 산업단지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실상은 수요 부진과 공급 과잉으로 인해 속 빈 강정으로 전락하는 모습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9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조한 ‘신생산력’ 구호 아래 투자가 몰리지만, 과잉경쟁과 낙관적 수요 예측에 ‘비효율 투자’와 ‘디플레이션 악순환’이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베이징 인근 철강 도시 탕산 외곽에 새로 조성된 산업단지는 본래 전기차 배터리 AI 같은 전략산업 유치를 목표로 했지만, 실제 입주 기업은 자동차 부품업체와 통행료 기기 제조사 몇 곳뿐이다. 대부분의 공장은 비어 있고, 일부는 건축자재 창고로 활용되는 실정이다.
이같이 복제되는 산업단지는 중국 전역에 퍼져 있다. 부동산 경기 급랭 이후 지방정부들이 GDP 성장률 맞추기에 몰두하면서, 전기차 AI 태양광 로봇 등 ‘선호 산업’으로 제조업 투자를 몰아넣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실제 중국의 제조업 고정자산 투자는 올해 7.5% 증가했으며, 지난해에도 9.5% 늘었다. 하지만 상당수 산업단지는 가동률이 낮고, 생산설비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탕산을 포함한 중국 중소도시 40곳을 조사한 미 컨퍼런스보드의 장위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들 도시는 GDP 대비 투자 비중이 평균 58%에 달해, 국가 평균(40%)은 물론 OECD 평균(22%)을 훨씬 웃돈다”며 “투자 강도는 높은데 노동생산성과 전요소생산성은 낮은 구조”라고 지적했다.
시진핑 정부가 강조한 ‘신생산력’이 고부가가치 산업 전환과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했지만, 현실에선 중복 투자와 자원 남용으로 효율성만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남부 둥관에서 완구공장을 운영하는 자오펀 씨는 “과잉경쟁으로 지난 10년 간 완구 가격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정부 보조금에 힘입은 신장비 도입이 경쟁만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유사한 어려움은 고부가가치 산업도 피하지 못했다. 베이징 공급망 박람회에 참가한 신소재 업체 관계자는 “플라스틱 제품도 가격 압박이 심하다”며 “정책 지원이 필요하지만 대부분 소리만 요란하고 개선은 없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이같은 과잉공급에 중국 정부도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7월 온라인 플랫폼을 상대로 ‘합리적 경쟁’ 지침을 내렸고, 태양광, 전기차 업계에도 비슷한 지시가 내려졌다. 최근엔 ‘가격법’ 개정안을 내놔 원가 이하 판매도 금지키로 했다.
하지만 이번 과잉은 과거 철강·시멘트 등 국유기업 중심 업종과 달리 민간기업 중심이라 개입 여력이 제한적이다. 베이징대 탕야오 교수는 “이번엔 EV 배터리 태양광 등 민간 투자가 대부분이라 시장 중심 해법이 필요하다”며 “지방정부의 특혜와 보조금 경쟁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는 내수 중심 경제로의 전환이 해답이지만, 전직 산업 근로자 재교육과 실업 지원, 복지 강화 없이는 지방정부들이 낙후 공장을 쉽게 정리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