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이야기
직장 내 괴롭힘, ‘안전한 근무환경’으로 접근해야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 6년을 맞았다. 최근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가 ‘보복성 해고’를 당한 노동자에게 사업주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하급심 판결이 나왔다. 법 적용 사각지대인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처음으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사례다.
그러나 이런 개별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직장갑질119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응답자의 절반 이상(55.7%)이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고 답했고 ‘회사를 그만뒀다’는 응답도 18%에 달했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47.1%)’,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32.3%)’가 꼽혔다.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이 ‘참거나 퇴사’를 선택하고 있었다.
공정한 고충처리, 인증된 외부전문기관에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2020년 5823건에서 2024년 1만2253건으로 약 2배 증가했다. 하지만 2024년 접수된 사건 중 실제 처분을 받은 건은 1458건으로 전체의 11%에 불과하다. 신고는 늘었지만 실질적 구제는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
현행 시스템의 한계는 명확하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기업 내 복잡한 갈등관계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동일한 행위도 조직문화, 당사자 간 힘의 격차, 발생원인 등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미묘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안이 결과적으로 근로감독관 개인의 판단에 의존하게 되고 있다. 노동부는 전담 근로감독관 지정, 독립된 조사공간 확보, 지방관서별 전문위원회 구성 등의 지침을 마련했지만 급증하는 신고 건수와 만성적 인력부족 등으로 본래 취지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노동자는 징계나 인사처분에 대해 사내 재심이나 노동위원회를 통해 다툴 수 있고 사업주는 과태료 처분의 이의신청이 가능하다. 피해자 역시 행정종결이나 ‘법 위반 없음’ 처분에 대해 재진정하거나 행정심판을 제기할 수 있다. 괴롭힘 판단의 모호성으로 인해 이와 같은 제도가 남용돼 각자의 입장에서 반복적인 민원제기와 행정심판이 빈발하고 있으며 소모적 분쟁의 악순환이 반복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제도가 취지에 맞게 작동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증된 외부전문기관이 상담부터 조사, 심의까지 담당하는 시스템을 검토해야 한다. 노동위원회가 괴롭힘 여부를 심의하고 피해자 구제명령이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면 보다 효과적인 구제가 가능할 것이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으로의 확대 적용을 위해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외부전문기관 활용을 위한 지원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사업주가 당사자 등을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적절하게 조치할 의무를 규정한 법이다. 즉 이미 일어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대응을 규정하는 ‘사후적’이면서도 그 범위는 ‘당사자’에 국한돼 있다.
예방 중심의 내부 시스템 구축 필요
반면 일본의 노동시책종합추진법은 ‘노동자의 취업환경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상담 대응 체제 정비 및 고용관리상 필요한 조치’를 사업주 의무로 규정해 예방에 방점을 찍고 있다.
우리 근로기준법에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을 직접 규정하는 조항이 없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안전보건(정기)교육 내용에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 및 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직장 내 괴롭힘 발생 후 조사 및 조치도 중요하지만, 괴롭힘이 당사자뿐 아니라 조직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면, 사후조치보다 사전예방이 우선돼야 한다.
법 시행 후 나타난 현상도 우려된다. 일하지 않는 조직문화, 관리자의 소극적 업무지시, 협력보다 개인 작업을 선호하는 풍토 등이 나타났다. 사회통념과 같은 모호한 기준 때문에 관리자들이 정당한 업무지시조차 주저하는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정부의 보다 상세하고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가 필요하다. 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조직 특성과 문화를 고려한 내부 규범을 만들고 특히 관리자 대상 교육과 매뉴얼을 통해 예방 중심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는 단순한 법 준수 차원을 넘어 안전하고 건강한 근무환경 조성의 문제다. 공정한 고충처리 시스템과 예방중심의 내부 체계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모든 노동자가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안성희 선진노무법인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