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컨테이너선에서도 선원 사망…해수부도 대책 마련 나서
정박·출항 과정에서 홋줄 사고 잇따라
반복되는 어선 안전사고 줄이기 집중
사고원인조사·대책마련 투명성 강화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앞장서서 산업재해 예방을 독려하는 가운데 해양수산부가 상선과 어선에서 잇따른 사망사고로 긴장하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1일 “최근 발생한 사고들 원인을 분석해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홋줄 조심하라’ 넘어 ‘안전한 선박 설계’ 필요 = 지난달 21일 오후 오만 소하르항에서 출항을 준비하던 HMM의 1만6000톤급 대형 컨테이너선에서 사고가 발생, 선원 1명이 현장에서 숨졌다. 해수부와 HMM 등에 따르면 사고는 선박을 부두에 정박할 때 사용하는 홋줄을 감아 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홋줄을 감아두는 장치(드럼)를 나온 홋줄은 부두에 있는 말뚝에 직선으로 연결돼 있지 않고 갑판 위에 설치한 가이드포스트라는 작은 기둥을 지나 90도로 꺾여서 연결돼 있었다. 선박은 부두에 정박할 때 선수(뱃머리)와 선미에서 각각 앞·뒤 방향으로 홋줄을 내려 부두에 있는 말뚝에 묶어두고, 출항할 때 이를 풀어서 다시 선박에 감아 둔다. 선박이 클수록 홋줄도 커진다. 큰 선박들은 인력으로는 홋줄을 내리고 걷어들이는 작업을 할 수 없어 거대한 기계장치를 사용한다. 소형 선박은 홋줄을 감아두고 푸는 장치(윈치)를 선박 가운데 두고 선수용 선미용으로 함께 사용하기도 하지만 선박이 대형화되면서 선수와 선미에 사용하는 전용 장치를 사용하는 게 작업할 때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화물을 적재할 공간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해 전용 장치를 설치하지 않고 선수·선미 겸용으로 쓰는 식으로 선박을 설계하는 경우도 있다.
컨테이너선 운항 경험이 있는 한 해기사는 “홋줄은 직선으로 펴져서 선박과 부두 말뚝에 연결돼야 하는데 가이드포스트를 이용해 90도로 꺾여 있었던 게 사고가 발생한 근본 원인”이라며 “홋줄이 90도로 꺾여 있기 때문에 장력이 커지면서 가이드포스트가 부서질 수 있는데 홋줄과 부서진 가이드포스트에 맞을 가능성이 큰 곳에서 선원이 콘트롤 레버를 잡게 해놓았다”고 지적했다.
해법은 홋줄이 꺾이지 않고 직선으로 펼쳐질 수 있게 선수용 선미용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고, 겸용으로 사용할 때는 가이드포스트가 부서지는 상황을 고려해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장력이 커지면 홋줄을 느슨하게 풀고 작업하라는 식으로 해서는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며 “작업자에게 주의해서 일하라고 하는 식이 아니라 작업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선박을 설계하지 않으면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또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만 사고 8일 뒤 부산신항에서도 일본 해운사 ONE의 컨테이너선 홋줄 작업을 하던 고령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부산항만공사에 따르면 홋줄을 고정하는 업체(줄잡이업)가 1톤 트럭을 이용해 줄을 당기는 과정에서 장력을 못 이긴 줄이 끊어졌고, 작업자가 끊어진 줄에 맞아 사망했다. 홋줄 사고는 자주 발생하지는 않지만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반복되지 않게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해수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에도 인천 옹진군 덕적도 인근 해상에서 견인용 예인선에서 작업하던 선원이 홋줄에 맞아 사망했다.
부산신항에서는 지난달 HMM 컨테이너선 도료 관련 선박 하부 세척작업을 하던 잠수부 3명 중 2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추정)으로 숨지고, 1명은 심정지 상태였다가 최근 의식과 호흡을 되찾았다. 이날 작업은 HMM 선체에 도료 작업을 한 KCC가 하부 세척작업 전문업체에 도급을 줘서 진행했다. 해수부는 KCC와 선사인 HMM의 계약 관계도 살펴보고 있다.
◆어선안전사고 초고위험업종 5개 =
어선 안전사고는 상선이나 화물선 예인선 등에 비해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더 자주 반복 발생하고 있다. 안전사고는 선박 충돌이나 침몰 등과 달리 선내에서 작업 중 일어나는 사고로 산업재해에 해당한다.
전재수 해수부 장관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산업재해예방 관련 국무회의에서 어선에서 안전사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지난해 어선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산업재해)로 사망·실종된 선원은 118명이다. 사망사고 건수는 76건으로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되는 5인 이상 고용 업체에서는 40건 발생했다.
주로 발생하는 안전사고 유형은 △양망기 사고 △구조물·줄 등의 신체 타격 △실족·파도 등으로 해상추락 등이다. 지난해에는 각각 6명, 5명, 16명이 이런 유형의 사고로 사망·실종했다. 최근 5년의 사고에서도 이들 유형의 사고로 사망·실종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해수부는 반복되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 최근 5년간 사고 발생 비율과 사망·실종 사고가 많이 발생한 업종을 4단계로 구분해 관리하기로 했다.
사고율이 10%를 초과하는 업종은 초고위험, 3% 초과 10% 이하 업종은 고위험으로 분류하고, 재해자 발생이 30명을 초과하는 업종은 경계, 사고율이 3% 이하 업종은 관심업종으로 분류했다.
초고위험 업종은 대형기선저인망(외끌이)어업, 동해구기선저인망어업, 근해통발어업, 근해안강망어업, 대형기선저인망(쌍끌이)어업 등 5개 업종이다. 고위험업종은 중형기선저인망어업, 대형선망어업, 대형트롤어업, 근해자망망업, 근해장어통발어업, 근해연승어업, 연안안강망어업, 기선권형망어업 등 9개 업종이다. 해수부는 특히 초고위험, 고위험 14개 업종을 핵심관리업종으로 정해 사고예방 활동을 집중하기로 했다.
한편, 선원들의 산업재해에 대해서는 사고원인조사와 대책 마련 과정이 더 투명하게 진행돼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성용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상선이든 어선이든 바다에서, 특히 해외에서 발생하는 선원들의 산업재해는 사고원인이나 개선상황 등이 사회적으로 잘 공유되지 않고 있어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사고원인 조사와 비슷한 사고 예방을 위한 개선책을 마련할 때 노동조합이 반드시 참여할 수 있게 해야 노동자가 사고 예방 주체로 역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