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뱅크 ‘대부업체 설득’ 난관
연체채권 매각에 반발
안 팔면 강제수단 없어
정부가 배드뱅크(부실자산 인수·정리기관)를 설립해 장기 연체채권 소각에 나설 예정이지만 대부업체들이 연체채권 매각에 반발하고 있어 향후 진통이 예상된다.
1일 금융당국과 대부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한국대부금융협회를 방문해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은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개인 무담보채권에 대해 캠코가 출자한 채무조정 기구(배드뱅크)가 대상채권을 일괄매입해 소각 또는 채무조정을 하는 것을 말한다. 상환능력을 상실한 연체자에 대해서는 채권을 소각하고 상환능력이 부족한 경우 원금의 최대 80%를 감면하고 10년간 분할상환을 해주는 것이다.
정부는 연체채권 규모를 16조4000억원, 대상자를 113만4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가 금융기관에서 연체채권을 일괄매입하면서 평균 매입가율(채권 장부가액 대비 실제 매입 가격 비율)을 5%로 제시하고 있다. 100만원의 연체채권을 5만원에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16조원 규모의 연체채권 중 절반 이상은 캠코가 보유하고 있지만 7조원 가량은 금융회사들이 보유하고 있어, 5% 매입가율로 사와야 한다.
문제는 단일 금융업권 중에서 연체 채권 보유 규모가 가장 많은 대부업권(약 2조원)이 비협조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대부업체들이 보유한 연체 채권 평균 매입가율은 25% 안팎이다. 5%에 연체채권을 넘길 경우 손실이 불가피하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연체채권을 왜 배드뱅크에 헐값으로 넘겨야 하나, 왜 우리가 손해를 봐야 하느냐는 대부업체들의 반발이 크다”며 “법정최고금리 인하와 각종 규제로 대부업 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정부가 대부업권을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에 약 8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6조4000억원의 연체채권을 5%의 매입가율로 매입했을 경우다. 4000억원은 2차 추경을 통해 정부 예산을 투입하고, 나머지 4000억원 가량은 금융회사들의 출연금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예산이 한정돼 있고 출연금을 더 늘리기도 어려워서 매입가율을 더 높게 잡기 힘든 상황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부업체들이 연체채권을 팔지 않겠다고 하면 사실상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대부업을 정상화시켜 어려운 사람들한테 실질적으로 자금이 공급되도록 해야 하는데 정부가 그런 정책을 내놓지는 않고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며 “협회도 대부업체들의 협조를 구하려고 하면 뭔가 명분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캠코는 내달 금융업권별 협약을 체결하고 10월부터 연체채권 매입을 개시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일정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