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사회’ 선언만 요란…기본 통계부터 허술
자원생산성 등 핵심지표 보완, 부처 간 협력 체계 강화해야 … 재활용률 과다산정 문제도 여전
“지속가능한 순환경제를 실현해 나갑시다. 인류는 그동안 채굴 생산 사용 매립의 일 방향으로 자원을 무한 소비해 왔습니다. 이러한 일 방향 경제 구조를 순환형으로 전환하여 지구 생태계에 부담은 줄이고 인류와 자연이 공존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7월 22일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취임사에서 밝힌 말이다. 선형경제가 아닌 순환경제 실현에 대한 의지는 과거에도 있어왔다. 2022년 ‘자원순환기본법’이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으로 전부 개정되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의욕적인 움직임을 보여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선언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7월 31일 장용철 충남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는 “순환경제사회라는 건 돈의 흐름과 같이 자원도 돌아가면서 순환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 고리들이 좀 끊겨 있다”며 “재활용 원료들이 제품들로 생산이 돼서 경제 영역으로 어떻게 투입돼서 사용되는지에 대한 흐름이나 통계량 등이 국가차원에서 집계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7월 31일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역시 “순환경제 지표를 제대로 만들어 내는 게 첫걸음”이라며 “가장 급선무는 재생원료 국내 생산통계를 명확하게 잡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플라스틱부터 시작해서 재생원료가 실제 얼마나 국내에서 생산되고 산업 공정에 얼마만큼 투입돼 활용되는지 통계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며 “이 수치가 구축되어야만 우리나라가 재생원료 기반 사회로 어느 정도 가고 있다를 명확하게 알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순환경제는 자원을 반복적으로 재사용하고 재활용해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는 경제시스템이다. 기존 선형경제의 ‘생산-소비-폐기’ 구조에서 벗어나 제품 수명 연장과 자원 순환을 통해 환경 보호와 경제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제대로 된 순환경제지표 마련이 첫걸음 = 국회예산정책처의 ‘순환경제 활성화를 위한 자원순환 정책 평가’ 보고서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순환경제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평가할 지표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가 순환경제 목표가 여전히 폐기물 발생이나 처분에 집중돼 자원이 실제 효율적으로 이용되는지 점검할 수 있는 성과지표가 미흡하다는 분석이다. 자원생산성(국내총생산액/자원투입량)이나 순환원료사용률(순환원료투입량/자원투입량) 등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국가 순환경제 성과목표는 △최종처분율 △순환이용률 △에너지회수율 △폐기물발생감량률 등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발생한 폐기물에 대한 성과지표로 제품 생산 소비 유통 등 전과정에서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지속가능한 순환경제 달성이라는 목적을 관리하기 위한 지표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이나 일본 등은 순환경제사회 전환을 위해 국가가 관리하는 성과지표로 자원생산성 등을 활용한다.
장 교수는 “재활용 여부나 수치 등을 통계로 집계하는 일에 머물지 말고 실제 시장에서 상품을 만드는 사람 등이 재생원료를 사용한 고품질의 제품들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정보 플랫폼까지 구축하는 방안도 고민을 해야 한다”며 “원료를 선택할 때 해당 제품이 얼마나 재생원료를 사용했고 품질 등급은 어떻게 되는지 등 상세한 자료들을 볼 수 있도록 해야 보다 빠르게 순환경제사회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7월 30일 환경부 관계자는 “해당 문제들을 인지하고 있으며 관련 법에 따라 1차 순환경제 기본계획을 수립을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제1차 순환경제 기본계획 정책협의회(포럼)’를 꾸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책협의회에 지표 분과를 신설해서 관련 지표들을 개발할 생각”이라면서도 “자원생산성의 경우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을 아꼈다.
사실 자원생산성 부분은 2022년 자원순환기본법을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으로 전부 개정하는 과정에서도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국회환경노동위원회 법률개정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산업부는 ‘산업발전법’에 자원생산성 향상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한 종합적 시책을 수립·시행한다는 점에서 자원생산성을 순환경제 지표로 설정·관리하는 방안에 대해 반대를 했다.
이는 순환경제 활성화 속도가 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순환경제는 한 부처만의 문제가 아니다. 폐기물의 재활용이나 안전한 처리는 물론 제품 생산단계에서 효율적인 자원과 에너지 활용 등 전주기에 관련한 일이므로 산업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등 여러 부처가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예정처 “통계상 재활용률 84.8%, 실질 70.3%” = 고질적인 폐기물 통계 과다산정 문제도 여전하다. 제대로 된 순환경제사회 실현을 위해서는 기본적인 통계부터 현실과 잘 맞물려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현황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을 위해서는 기본이다. 하지만 실제 재활용량 보다 더 많은 양이 재활용 통계에 잡히는 문제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도 이 문제는 계속 지적되어 왔지만 뾰족한 해법이 나오지는 못하고 있다.
정부는 사업체나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처리 실적 등을 제출받아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 자료를 발표한다. 또한 우리나라 폐기물 발생량 통계는 재활용시설 매립시설 소각시설 등 폐기물처리 시설에서 반입되는 폐기물량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문제는 재활용되지 못하는 잔재물도 선별장이나 재활용시설에 반입되면 재활용량으로 산정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재활용시설 A에 폐기물 10톤이 들어왔고 이 중 실제로 재활용은 7톤이 됐다고 치자. 나머지 3톤은 잔재물로 처리됐지만 실제 재활용량은 10톤으로 산정되는 식이다.
‘순환경제 활성화를 위한 자원순환 정책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폐기물 발생량 통계 기준 재활용률(2016년 기준)은 84.8%이지만 잔재물을 제외한 실질재활용률은 70.3%로 추정된다. 또한 생활폐기물의 경우 재활용률은 60.0%이지만 실질재활용률 35.8%로 격차가 크다. 우리나라 폐기물은 크게 △생활계폐기물 △사업장배출시설계폐기물 △건설폐기물 △지정폐기물 등으로 나뉜다.
물론 이러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자 정부도 최근에는 잔재물 통계를 산정하고는 있다. 하지만 업체들마다 서로 다른 잔재물 계수를 표준화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곧 순환이용률과도 맞물리는 문제다. 순환이용률은 재활용시설이나 선별장 등에 반입된 폐기물의 양에 잔재물 계수를 곱하는 식으로 산정된다.
‘순환경제 활성화를 위한 자원순환 정책 평가’ 보고서에서는 “현 폐기물 발생량 작성방식으로는 국가 성과목표인 순환이용률과 최종처분율 산정이 어렵고 연도별 성과목표 달성 여부를 점검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또한 폐기물 발생량은 2022~2023년 감소했지만 최근 10년간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생활계폐기물 발생량이 늘고 있지만 재활용률은 감소하는 경향으로 자원순환 체계가 양적으로는 일정 수준을 유지하지만 질적 개선에는 한계가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7월 30일 환경부 관계자는 “잔재물 다음에 중간 가공 폐기물로 다시 분류해서 사업체 등으로부터 실적 보고를 받아야 하는데 현장에 정착될 때까지의 수용성 문제 등 고민해야 할 지점들이 있다”며 “어떻게 하면 좀 더 실효성 있는 방안으로 정책 설계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올바로’ 시스템을 구축해 사업장폐기물 배출부터 운반·최종처리까지 전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 중이기 때문에 사업장폐기물이 관리에서 빠져나가는 부분은 현실적으로 없다”며 “이른바 닫힌 시스템 안에서 통계가 중복으로 잡히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여러 의견을 듣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