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50% 의약품 관세 시사
CNBC 인터뷰 “내주께 품목별 관세 더 발표” … “차기 연준의장 후보는 4명”
이번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몇 달간 강조해 온 무역정책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수위로 평가된다. 그는 지난 7월에도 의약품 200% 관세를 언급했지만 이번에는 그보다 높은 250%까지 제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 의약품을 대상으로 한 ‘섹션 232’ 조사(미국 상무부가 수입품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수 있는 절차)를 개시했다. 이는 제약 산업을 사실상 전략산업으로 격상해 보호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제약 업계는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초고율 관세가 부과될 경우 생산 비용 급등, 공급망 차질, 미국 내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미국 내 의약품 생산은 지난 수십 년간 점진적으로 해외 이전이 이뤄졌다. 특히 원료의약품(API)과 제네릭(합성의약품) 생산의 상당 부분은 인도와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250% 관세 부과 시 단기적으로 가격 급등과 일부 품목의 품귀 현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글로벌 제약사들을 압박해 미국 내 신규 투자를 유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의약품이 생산되길 원한다”며 “제약사들은 1년에서 1년 반 동안 미국으로 돌아올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라이 릴리, 존슨앤드존슨 등 일부 대형 제약사는 최근 6개월 사이 미국 내 신규 투자를 발표하며 친트럼프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역시 차기 관세 부과 품목으로 거론하며 “다음 주쯤 품목별 관세 계획을 추가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인 반도체와 의약품을 동시 겨냥함으로써 트럼프 행정부가 제조업 전반의 ‘미국 회귀(reshoring)’를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유럽연합(EU)을 겨냥한 발언도 이어갔다. 그는 한국과의 무역 합의를 “엄청난 사업 기회”라며 “한국은 과거 폐쇄적인 나라였지만 이제 미국산 자동차, 트럭, SUV 판매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EU의 대미 투자 약속 6000억달러를 “대출이 아닌 선물”이라고 표현하며 투자 이행이 없을 경우 35%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한국이 약속한 3500억달러 투자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에서는 대출이 아닌 무상 투자 성격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아 향후 해석 차이가 불거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과의 무역 협상에 대해서는 “매우 근접했다”며 합의 타결 시 연말 전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할 의사를 밝혔다. 다만 합의가 결렬될 경우 회담은 없을 것이라고 압박했다. 인도에 대해서는 러시아산 원유 구매 지속을 문제 삼으며 “향후 24시간 내 인도에 대한 관세를 현행 25%보다 크게 올리겠다”고 경고했다. 그는 “에너지 가격이 충분히 낮아지면 푸틴(러시아 대통령)은 전쟁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원유 가격 인하를 통한 러시아 압박 전략을 내비쳤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인사와 관련해 새로운 신호를 보냈다. 최근 사임한 아드리아나 쿠글러 연준 이사의 후임을 두 명으로 압축했다고 밝히며 이번 주 안에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 등 네 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 이사 인선과 함께 차기 의장 발표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하며 금융시장에 또 한 번 변동성을 예고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