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역사·통계·언론 통제로 진실과 전쟁
불리한 사실 지우기
통계 수치도 정치화
언론에 가짜뉴스 낙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연속된 조치로 ‘진실’ 자체를 거부하고 통제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불리한 역사 기록을 지우고, 정부 통계를 불신하며, 언론의 영향력을 약화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의 핵심 기반인 사실과 데이터, 기록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역사 개입은 그중 가장 상징적 사례다. 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는 스미스소니언 미국역사박물관이 대통령 스캔들 전시에서 트럼프의 두 차례 탄핵 기록을 삭제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전시는 앤드루 존슨, 리처드 닉슨, 빌 클린턴만 언급하며 “세 명의 대통령만 탄핵 위기에 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는 트럼프가 클린턴보다 상원 유죄 판결에 더 가까웠다. 스미스소니언 측은 전시 자료가 “임시”였다고 주장했지만, 부통령 J.D. 밴스를 포함한 행정부는 박물관이 “분열적이고 인종 중심적”이라고 비판하며 국립초상화관 관장 해임까지 시도했다. 미국 시사잡지 디 애틀랜틱은 4일자 기사에서 이를 “불리한 역사적 기록을 지우려는 명백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통계와 데이터도 공격 대상이 됐다. 7월 고용보고서 수정으로 경제 둔화가 드러나자 트럼프 대통령은 노동통계국(BLS) 국장 에리카 맥엔타퍼를 해임하며 보고서를 “가짜”라고 불렀다. 더글러스 엘멘도프 전 의회예산국장은 6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는 정직한 정보 흐름에 달려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억누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학자들은 통계의 정치화가 정책 실패와 신뢰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언론과 공공 정보 인프라 역시 흔들리고 있다. 미국 공영방송공사(CPB)는 의회의 예산 철회로 폐쇄를 선언했다. 대도시 방송은 자립할 수 있지만 지방은 뉴스 사막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디 애틀랜틱은 “정보 접근 자체를 차단하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과거에도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가짜 뉴스’라 부르며 기자들을 공격해왔고, 이번 CPB 폐쇄로 공공 뉴스망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됐다.
사법과 행정 인사에서도 ‘진실보다 충성’이 우선됐다. 폭스뉴스 진행자 출신 자닌 피로가 워싱턴 D.C. 연방검사장에 임명됐다. 그녀는 2020년 대선 도난설을 퍼뜨렸고, 폭스 내부에서도 “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는 2020년 선거 전복과 마러라고 문서 사건을 수사한 잭 스미스 특검을 해치법 위반으로 조사하며 사실상 보복에 나섰다.
트럼프의 행동은 일관된 패턴을 보인다. 불리한 데이터는 부정하고, 기록은 지우며, 전달자는 공격한다. 그는 2016년과 2020년 대선을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했고, 2019년 허리케인 도리안 때 앨라배마를 경로에 넣기 위해 지도에 직접 선을 그었다.
트럼프의 현실 통제 시도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공적 기록과 통계, 언론의 신뢰를 정면으로 흔드는 행위이자, 진실 자체를 겨냥한 전쟁이다.
전문가들은 이 전략이 단기적으론 정치적 효과를 낼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행정부와 민주주의 모두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시간대 베시 스티븐슨 교수는 “노동통계국장 해임은 직원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보고하면 해고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며 신뢰도 악화를 우려했다. 엘멘도프 전 국장은 “대통령을 견제할 권한은 의회에 있다. 아직 행사하지 않았지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