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 넘치는 저축이 성장 막는다
복지제도 미비에 소비 부진
자금순환 정체가 경기 발목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가계 저축률을 기록하고 있다. 가구당 소득의 약 30% 이상이 소비되지 않고 저축되며, 자산 대부분은 부동산이나 은행 예금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돈이 모이고 있음에도 경제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저축이 넘쳐도 성장이 더디기만 한 이유는, 이 돈이 생산이나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5일(현지시간) 아시아전문 경제분석가인 사이먼 콕스가 출연한 팟캐스트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분석했다.
콕스는 “문제는 단순한 저축 과잉이 아니라, 그 저축이 어디로 가느냐”라고 지적했다. 실제 중국에서 축적된 자금은 부동산에 묶이거나, 은행 예금으로 쌓이고 생산적인 투자로 연결되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다. 또한 복지 체계가 미비해 가계가 저축을 줄이고 소비를 늘릴 여건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중국에서 부동산은 집값 상승이 확실시되며 가장 안전한 투자처로 여겨졌지만, 최근 수년간 가격이 하락하고 미분양이 증가하면서 오히려 유동성이 떨어진 자산으로 바뀌었다. 집을 팔고 싶어도 거래가 되지 않고, 낮은 가격에 매각하면 손실이 커지기 때문에 쉽게 팔기도 어렵다. 결과적으로 자산은 많지만 현금이 부족한 상황이 확산되고 있다.
더구나 중국 민간 기업들이 최근 몇 년간 투자에 소극적이다. 수요 부진, 미중 갈등, 정책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기업들이 리스크를 회피하면서 시중의 풍부한 자금이 국유기업 부채나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와 같은 비생산적인 부문에만 머물고 있다. 생산설비나 고용 창출 같은 경제 활성화 투자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도 예금이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대출을 늘리지 않고 있다. 자산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크고, 부동산 관련 대출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은행이 돈을 시장에 다시 풀기를 꺼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계가 맡긴 자금은 은행에 갇혀 시장으로 순환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중국의 연금과 복지제도의 취약성에서 더 심화된다. 선진국에서는 가계 저축이 연금이나 의료 보장 등 사회적 소비로 연결되지만, 중국에서는 복지제도가 미흡해 국민이 노후와 의료비 부담에 대비해 자발적으로 더 많은 저축을 쌓는다.
이는 내수 소비 부진을 초래하고 결국 경제 성장을 막는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적 연금과 의료보험 확대를 통해 복지제도를 강화하고, 금융시장의 투명성을 높여 다양한 투자처를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콕스는 진단했다. 또 민간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규제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를 통해 자산 유동성을 높이고 은행 대출 규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부동산과 은행에 묶여 있는 자금의 원활한 순환을 촉진하고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것이 성장 회복의 핵심 과제란 것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