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로 치닫는 대만 민주주의

2025-08-08 13:00:01 게재

내부 분열이 불러온 안보 불안 당파적 대립과 국방 혼란 극심

지난달 26일 대만에서는 입법위원 113명 중 24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소환 선거가 실시됐다. 전체의 21%에 해당하는 의원을 동시에 소환하려는 시도는 대만 정치사에서 처음이었다. 그러나 모든 소환안은 부결됐다.

1일자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대만 민주주의의 극심한 분열을 보여주는 사례다. 집권 민주진보당(DPP, 중도좌파)과 제1야당 국민당(KMT, 중도우파)은 서로를 민주주의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라이칭더 총통은 소환을 “사회의 불순물 제거”라고 주장했고, 국민당 주리룬 대표는 DPP를 나치에, 라이 총통을 히틀러에 비유했다. 제3당 대만민중당(TPP) 역시 DPP를 비난하고 있다.

양측의 극한 대립은 입법부 마비로 이어졌다. 국민당과 민중당은 의회 다수를 차지해 라이 총통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저지하고 있다. 이에 반발한 진보 성향 시민들은 국민당 의원 약 3분의 1을 소환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8월 말에는 국민당 소속 의원 7명이 추가 소환 표결을 앞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부결이 분열을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양측의 적대감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한다.

정치적 교착은 안보 문제로 직결된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은 대만 주변에서 군사 활동을 강화하며 무력 사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해협과 인근 영공에서 정기 훈련을 실시하고, 시진핑 국가주석은 양안 통일을 “역사적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만 내부의 분열로 국방 대응력은 약화됐다. DPP는 국방비 증액을 추진했지만 국민당은 삭감을 요구하며 반대했다. 그 결과 수십억 대만달러 규모의 군사 예산이 동결되었고 일부 예산은 여전히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정치적 양극화는 뚜렷하다. 대만 국방안보연구소가 3월 실시한 조사에서 중국 침공 시 싸우겠다고 답한 비율은 DPP 지지자 85%, 국민당 48%, 민중당 54%였다. 미국에 대한 신뢰도 역시 큰 차이를 보였다. 4월 조사에서 DPP 지지자의 50%가 미국을 신뢰한다고 답했지만, 국민당은 3%, 민중당은 10%에 불과했다. 이런 수치는 실제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단결이 제한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중국공산당은 이미 대만 내 분열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20년과 2024년 대선에서 본토에서 유포된 허위정보가 대만 유권자를 겨냥해 “DPP에 투표하면 전쟁이 난다”거나 “민주주의는 무의미하다”는 메시지를 확산시킨 사실이 감시단체에 의해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본토의 개입이 없더라도 대만 사회의 분열은 이미 심각하며, 중국은 여기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만은 과거에도 위기 속 회복력을 보여왔다. 1980년대 계엄령 해제 이후 불과 수십 년 만에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정착시켰으며 코로나19 초기에는 정치권과 사회가 단결해 방역에 성공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극단적 당파 대립이 이어질 경우 외부 공격보다 내부 불신이 먼저 대만 민주주의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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