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동차업계, 엔비디아칩 대체 노력
호라이즌·블랙세서미 등 주목받는 칩 개발사 … 닛케이 “2030년 중국 국산화율 70% 안팎 예상”
중국의 자동차 제조사와 반도체 기업들이 엔비디아 등 외국산 칩을 대체하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수출규제가 자율주행 등 핵심기술 개발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다.
6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엔비디아 칩을 공급받던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샤오펑(Xpeng)과 니오(Nio)는 미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체 자율주행 칩을 개발하고 있다. 샤오펑은 최신 모델에 자체 개발한 ‘튜링(Turing)’ 칩을, 니오는 ‘선지 NX9031(Shenji NX9031)’ 칩을 각각 탑재했다.
호라이즌 로보틱스(Horizon Robotics), 화웨이 산하 하이실리콘(HiSilicon), 블랙 세서미(Black Sesame), 세미드라이브(SemiDrive), 시엔진(Siengine Technology) 등 중국의 반도체 개발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 기업은 중국 완성차 업체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며 입지를 넓히는 중이다. 이들을 포함한 10여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자동차 반도체 시장을 최우선 사업분야로 삼고 있다.
10여개 기업, 자동차반도체 최우선
‘충칭 신롄 집적회로유한공사(XLMEC)’는 자동차용 특수 마이크로컨트롤러와 전력관리 칩을 주력으로 개발한다. 이 기업은 “세계적 수준의 자동차용 반도체 기업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저장성 샤오싱 소재 ‘유나이티드 노바 테크놀로지’는 “우리 전력반도체 제품은 이미 국제 경쟁력을 갖췄다. 아시아에서 생산능력 기준으로 선두권”이라고 주장했다.
광저우 소재 ‘캔세미(CanSemi)’는 광저우자동차그룹(GAC)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차량용 반도체 양산을 준비중이다. 상하이 소재 ‘윙스카이세미(WingSkySemi)’는 자사의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라인이 글로벌 기준을 충족하며 보쉬(Bosch)의 품질 인증을 받았다고 밝혔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중신궈지(SMIC)도 이 같은 흐름의 수혜를 보고 있다. 중신궈지의 자동차 및 산업용 반도체 매출 비중은 2020년 3% 미만에서 현재 10%로 증가했다. 2위 파운드리 화홍반도체(Hua Hong Semiconductor)도 장쑤성 우시에 자동차용 칩 생산능력을 확충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 제조사들도 반도체 설계와 생산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비야디(BYD), 광저우자동차그룹, 제일자동차그룹(FAW), 장성자동차, 지리(Geely) 등은 자체적으로 반도체 개발 제조 패키징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전방위적인 노력은 중국정부가 자동차 산업에서 100% 자국산 칩 사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방침과도 일치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 글로벌리서치의 중국자동차 대표 리밍쉰은 “지난해 기준 중국산 칩이 전체 자동차 반도체 공급의 약 9%를 차지했으며 올해는 15~20%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리 대표는 완성차 업체의 자체 칩까지 포함할 경우 향후 5년 내 이 비중이 50%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리 대표는 “일부 브랜드들이 자체 칩을 채택하면 시스템 통합 등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엔비디아 칩은 다양한 알고리즘이나 소프트웨어와 호환성이 뛰어난 반면, 중국산 칩은 초기에 타사 시스템과의 통합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중국 자동차 브랜드 중 일부는 저가모델에서 원가절감을 위해 성능이 엔비디아보다 다소 떨어지더라도 자체 칩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호라이즌 칩, 엔비디아와 별 차이 없어”
중국의 자율주행 및 차량용 칩 개발 확대는 엔비디아에 또 다른 타격이 될 전망이다. 엔비디아는 미국정부 수출규제와 함께 중국 당국의 보안조사를 받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기업 젠슨 황 CEO는 최근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혁신역량은 강력하다”고 밝히며 시장 유지를 다짐했지만 미의회는 AI 칩의 대중국 수출 지속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자동차용 반도체를 제조하는 네덜란드 NXP, 일본 르네사스(Renesas), 미국 온세미(On Semi), 독일 인피니언(Infineon),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등도 중국 업체의 부상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엔비디아의 주요 경쟁자인 호라이즌 로보틱스는 자율주행용 AI 칩과 알고리즘,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BYD와 지리, 리오토 등 40개 넘는 자동차 브랜드에 310개 이상 모델을 공급하고 있다. 칩 설계는 직접 하지만 제조는 대만 TSMC에 맡기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 완성차 업체들은 중저가 모델에는 호라이즌 로보틱스 칩을, 고급 모델에는 엔비디아 칩을 혼용해 사용하는 추세다. BYD는 지난해 2월 공개한 자율주행 시스템 ‘신의 눈(God’s Eye)’에 엔비디아와 호라이즌 칩을 절반씩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와 AMD, 호라이즌 등 주요 업체에 기판을 공급하는 한 반도체 부품업체 임원은 “호라이즌의 칩 성능은 많이 향상됐다. 현재는 엔비디아와 큰 차이가 없다”며 “7나노 칩 설계 능력을 갖췄고 성능과 에너지 효율도 경쟁력이 있는 데다 가격도 저렴하다”고 말했다.
선전 소재 자동차 컨설팅업체 ‘가오궁 인텔리전트 오토모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차량수 기준으로 가장 큰 시장인 ‘레벨 0~2’자율주행 솔루션 시장에서 호라이즌이 33.97%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모빌아이(20.35%)와 엔비디아(14.71%)가 뒤를 이었다.
미국정부는 지난해 TSMC 삼성전자 등 주요 파운드리에 대해 7나노 이하 AI 칩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올해는 그보다 약간 낮은 사양의 칩까지 추가 제한했다. 이 규제로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패키징 서비스도 제약을 받고 있다.
베이징 소재 칩 개발사 세미드라이드의 대표 유진 왕은 “우리는 현재 16나노 칩을 공급 중이지만 내년부터 차세대 4나노 칩을 양산할 예정”이라며 “우리는 현재 공급망 안정성뿐 아니라 비용 통제 차원에서도 가능한 반도체는 직접 개발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리 산하 반도체 자회사 시엔진의 한 임원은 “올해 7나노 자율주행 칩 ‘싱천-1(Xingchen-1)’이 양산에 들어갔다. 칩 하나당 AI 연산 성능은 최대 512 TOPS(초당 테라 연산)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엔비디아의 Orin X(254 TOPS)의 2배 가까운 성능이다.
시엔진은 현재 TSMC에서 칩을 제조한 후 중국 쑤저우에서 패키징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중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을 고려해 중신궈지와의 협력을 검토중이다.
미국 수출제한에 자립 움직임 강화
노무라증권 반도체 애널리스트 도니 텡은 “중국은 이미 대부분의 성숙 공정 기반 반도체를 자국에서 생산할 수 있다. 자동차용 반도체의 국산화율을 높이는 것은 계속되는 추세”라며 “전력반도체 분야에서는 이미 높은 자립도를 달성했으며 센서와 아날로그 칩, 마이크로컨트롤러 유닛(MCU)도 점차 따라잡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고급형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스마트 콕핏)이나 자율주행용 고성능 칩의 경우 첨단공정에 대한 생산능력 부족이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스마트 콕핏 시장은 미국 퀄컴이 약 70%를 점유중이다.
세미드라이브 왕 대표는 “중국 업체들은 중가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며 “퀄컴을 따라잡으려는 것이 과연 현명한 전략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관련시장은 크지만 대부분 기업에는 너무 비싼 전략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 IBS에 따르면 중국의 MCU 국산화율은 2024년 19%에서 2030년 67%까지 상승할 전망이다. MCU는 창문과 에어백 카메라 레이더 등 차량의 다양한 전자기능을 제어하는 데 사용된다.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 스위치 칩의 자체생산 비중도 같은 기간 5%에서 74%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맥쿼리캐피털의 중국 전략 책임자 유진 샤오는 “MCU와 전력칩 분야에서 중국은 이미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으며 BYD의 반도체 부문은 고급 전력칩 생산역량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자동차의 빠른 전기화·디지털화 추세는 인포테인먼트 및 자율주행용 로직 칩을 설계하는 신규 업체에 큰 기회를 주고 있다”며 “호라이즌 로보틱스, 블랙 세서미 등 신생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대중차 시장에서 수요가 강력해 이들에게 중요한 진입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