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비슬산(琵瑟山)의 기억과 ‘속옷 저항’

2025-08-11 13:00:02 게재

대검 중수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을 거치면서 나름 잘 나가는 검사로 꼽히던 윤석열은 2014년 1월 대구고검으로 발령났다. 좌천인사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윤 검사가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가 박근혜정권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윤 검사 부부와 친분이 두터웠던 ‘법사’가 위로 차 대구를 찾았다. 법사 눈에 대구고검 저 너머 비슬산(琵瑟山)이 들어왔다. 법사는 읊조렸다. “비파 비(琵)자와 거문고 슬(瑟)자에 왕(王)자가 4개다. 왕 3명의 피를 보면 윤 검사가 왕이 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윤 검사가 대통령 3명을 제치면 다음에는 윤 검사가 대통령이 된다는 소설 같은 얘기를 꺼낸 것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윤 검사는 이후 작심한 듯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낙점을 받아 고속승진했지만 ‘조 국 수사’로 문재인정권 등에 칼을 꽂았다.

결과적으로 전현직 대통령(왕) 3명의 피를 봤고, 윤 검사는 ‘공정의 상징’으로 부각되면서 권좌에 올랐다. 산꼭대기 바위의 모습이 마치 신선이 앉아 비파를 타는 모습과 같다해서 붙은 비슬이란 아름다운 이름은 대통령 3명의 피를 부른 참혹한 권력신화로 변질됐다.

윤 검사는 이제 구치소에 갇힌 전직 대통령 신세가 됐다. 그는 전직 대통령 3명에게 부패와 불공정의 낙인을 찍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22년형을 안겼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17년형이 선고됐다.

전직 대통령들에게 그토록 매섭던 윤 검사는 자신을 향하는 특별검사의 칼날에는 ‘속옷 저항’ ‘의자 붙박이’로 맞서고 있다. 특검이 체포영장을 집행하려하자 속옷만 입고 불응하거나 의자에 매달려 나오지 않겠다고 버텼다. 특검의 두번째 체포 시도 때는 물리적 충돌 논란까지 빚었다. 윤 검사측은 “윤 전 대통령이 허리를 의자 다리에 부딪치기도 했고, 팔을 너무 세게 잡아당겨서 ‘팔이 빠질 것 같다. 제발 좀 놔 달라’고 해서 강제력에서 겨우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윤 전 대통령의 저항은 구차해 보인다. 일부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의 동정론을 끌어내기 위한 제스처일지 모르겠지만 전직 대통령을 줄줄이 구속시켰던 검사 윤석열의 기개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왜 특별검사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지 못하고 ‘속옷’에 기대고 ‘의자’에 매달리는가.

AFP통신은 ‘한국의 탄핵된 윤 전 대통령이 검찰수사에 저항하며 속옷 차림으로 누웠다(lying in underwear). 속옷 색상에 관한 정보는 없다’며 윤 전 대통령의 ‘속옷 저항’을 전 세계로 타전했다. 부끄럽다. 그런데 왜 이 부끄러움은 항상 국민의 몫이어야 하는가.

엄경용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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