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에 환율, 유럽기업 ‘이중타격’

2025-08-11 13:00:01 게재

르몽드 “관세보다 환율”

올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주의’ 관세를 발표한 뒤 달러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하자, 유럽 곳곳에서 ‘이제 유로화가 세계 무대의 주역이 될 순간이 온 것인가’라는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천문학적 부채를 쌓아가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독립성마저 공개적으로 흔드는 백악관의 변덕스러운 결정들 앞에서, 단일 통화인 유로가 안정적 피난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커졌다.

유럽중앙은행(ECB)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한 연설에서 “현재의 변화는 유럽이 스스로 운명을 더 잘 통제하고 유로가 세계적 위상을 높일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난 지금 유로화 강세는 유럽 기업들의 큰 불만을 사고 있다. 프랑스 르몽드지는 10일 “아직은 가변적이고 불확실한 트럼프발 관세보다 유로화 가치 상승이 주요 기업들에 훨씬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달러 대비 유로는 올해 들어 13% 상승해 1.17달러에 이르렀다. 중국 위안화 대비로도 비슷하게 상승했다. 일본 엔화와 한국 원화 대비로는 약 6% 상승했다.

통신장비업체 노키아의 저스틴 호타드 CEO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각) “유로 강세로 인한 환율 문제와 관세라는, 통제할 수 없는 2가지 맞바람을 맞고 있다”며 “노키아의 경우 환율 효과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노키아의 올해 영업이익은 환율 영향으로 2억3000만유로(약 3730억원) 줄어들 전망인데, 관세로 인한 감소분은 5000만~8000만유로 수준에 불과하다. 스포츠의류 기업 아디다스도 마찬가지다. 올해 2분기 매출이 8% 늘었지만, 유로 환산 기준으로는 2% 증가에 그쳤다. 가격에 민감한 와인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프랑스 주류수출연맹 가브리엘 피카르 회장은 “미국 시장에서 관세가 15% 오르고 유로 환율이 15% 변동하면 가격이 30% 뛴다는 뜻”이라며 “수출물량이 약 25%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클레이즈은행이 유럽 기업들의 2분기 실적 발표를 분석한 결과, 59%가 환율 변동을 언급했으며 이 가운데 85%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반면 관세를 언급한 비율은 47%, 부정적 언급은 46%에 그쳤다.

바클레이즈의 유럽 주식전략 책임자 에마뉘엘 코는 “관세는 영향이 확산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환율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효과를 낸다”며 프랑스가 특히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내수가 정체된 데다 수출 의존도가 높아 유로화 강세에 더 큰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프랑스 상품 무역적자는 430억유로로, 지난해 하반기 대비 12% 늘었다.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는 지난달 초 “ECB 라가르드 총재가 유로화의 시대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지만, 유로가 1.20달러로 오르면 유럽인들은 곧 ‘유로 가치가 너무 강하다’고 불평할 것”이라며 “기축통화국이 된다는 건 책임이 따른다. 유로존이 달러와 진정한 경쟁을 원한다면 통화 강세를 감수해야 한다”고 조롱 반 충고 반의 언급을 내놓았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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