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중국 매출 15% 미국에

2025-08-11 13:00:03 게재

트럼프 행정부와 조건부 수출 허가 합의…미·중 기술 경쟁 속 논란 확산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Jensen Huang)이 5월 21일(현지시간) 타이베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와 AMD가 중국 시장용 인공지능(AI) 칩 수출 허가를 받는 조건으로, 해당 제품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지불하기로 합의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이번 합의는 트럼프 행정부가 두 회사에 대해 수출 허가를 발급하는 대가로 체결됐다. 엔비디아는 중국 판매용 H20 칩 매출의 15%를, AMD는 MI308 칩 매출의 15%를 각각 미국 정부에 납부하기로 했다. 미 정부는 이 자금을 어떻게 사용할지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다.

이 같은 ‘매출 공유’ 방식의 수출 허가 조건은 전례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과거에도 미국 정부가 관세 부과나 규제 완화를 조건으로 기업의 국내 투자 등을 유도한 사례는 있었지만, 수출 허가와 직접 연계해 매출 일부를 요구한 것은 처음이다.

상황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지난 9일 H20 칩에 대한 수출 허가를 발급했으며, 이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7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한 지 이틀 만이었다. AMD 역시 중국 판매용 칩에 대한 허가를 받았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첨단 AI 칩의 대중 수출을 제한하는 규제를 도입했고, 이에 엔비디아는 중국 시장에 맞춘 H20 모델을 출시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 H20 수출 금지를 발표했다가, 6월 황 CEO와의 회동 이후 방침을 바꿨다. 이후 몇 주간 허가가 지연되자, 황 CEO가 다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제를 제기했고, 곧 허가가 내려졌다.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에 따르면, 규제 전 엔비디아의 전망치를 기준으로 하면 H20 칩은 올해 중국에서 약 150만 개가 판매돼 약 230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국 정부가 해당 매출의 15%를 가져갈 경우 상당한 금액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 결정은 워싱턴 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부 미 안보 전문가와 전직 관리들은 H20 칩이 중국의 최첨단 AI 역량을 가속화하고 군사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전문가이자 트럼프 1기 행정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근무했던 리자 토빈은 “베이징은 워싱턴이 수출 허가를 수익 창출 수단으로 바꾸는 것을 보고 흡족해할 것”이라며 “그 다음은 혹시 록히드마틴이 F-35 전투기를 중국에 팔고 15% 수수료를 챙기는 겁니까?”라고 비판했다.

또한 AI 스타트업 앤트로픽(Anthropic)의 다리오 아모데이 CEO도 지난 달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H20 칩의 대중 수출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중국이 이 칩을 활용해 인공지능을 빠르게 발전시킬 경우, 미국이 AI 분야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이는 단순한 시장 경쟁이 아니라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상무부 산하 일부 수출통제국(BIS) 관계자들 역시 규제 완화에 우려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는 “우리는 미국 정부가 정한 규칙을 준수한다”며 “중국이 H20을 군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 없다”고 반박했다. 또 “미국이 5G에서 통신 주도권을 상실한 상황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의 AI 기술 스택이 세계 표준이 되도록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수출 허가와 규제 완화 조짐은 미·중 무역 협상과도 맞물려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목표로 새로운 대중 수출 규제 도입을 보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AI 칩 생산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일부 부품에 대한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AMD는 이번 합의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엔비디아와 AMD의 ‘매출 15% 납부’ 조건부 수출 허가가 향후 미·중 기술 경쟁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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