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법 바꾸고, 30분 농촌생활권 만들자”

2025-08-11 11:16:39 게재

“비수도권 지역소멸이 대세? 포기하긴 일러 … 상상력 발휘해야”

‘절박감’에서 내놓은 대광법 개정안, 지역 교통망 신설 판도 바꿔

2025년 4월 22일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대광법)이 공포되던 날, 전북자치도 등 자치단체와 정치권은 기념행사를 열고 “대전환의 계기를 맞았다”며 반겼다.

대광법 개정안 이후 교통망 확충 방안 토론회

대광법 개정안 이후 교통망 확충 방안 토론회

전북자치도와 전주시, 전북도의회, 전북연구원 등이 참여해 대광법 개정안에 따른 전주권 교통망 확충 계획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전북자치도 제공

수도권과 광역시 같은 대도시권의 광역교통 문제를 정부가 지원해 해결하기 위해 1997년에 만들어진 법에 ‘인구 50만 이상·도청 소재지 도시권역’을 새로 넣었다. 광역시와 광역도를 연계하는 도로·철도, 버스·환승센터를 구축할 때 30~70%까지 국비를 지원하는데 광역시가 없다는 이유로 빠졌던 ‘전주권’이 지원대상이 된 것이다.

전북자치도와 전북정치권이 중심이 돼 국회 의결로 법 개정이라는 ‘꼭지’를 딸 때, 김상엽(45·교통공학) 전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도로법’을 뒤적였다. ‘대광법 개정’ 성과를 실질적 성과로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다음 수순이기 때문이다.

"18년간 광역교통망 예산 0원"

“왜 전북에는 광역도로와 광역철도 사업이 단 한 건도 없을까”

김상엽 전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상엽 전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상엽 전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광법 개정을 통한 교통망 지역균형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전북연구원 제공

교통수요 예측과 경제성 분석 업무를 수행하던 김상엽 박사가 대광법을 집중적으로 들여다 보기 시작한 이유다. 정부가 마련한 2007~2025년 대도시권 광역교통 시행계획에서 전북은 빠져있다. 광역시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 박사는 “2013년 전북연구원에 부임했지만 광역교통을 논의하는 주요 학술행사나 정책회의에 전북과 전북연구원은 초대받지 못했다”면서 “수도권과 5대 광역시 권역만 적용되는 제도적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나 오랜기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될리 만무했다. 정부는 ‘전북만을 위한 법’이라며 거부했고, 전북을 제외한 타 지역 정치권도 ‘이익 편향성’을 들며 외면했다. 그는 “전북만 광역교통 사각지대로 남게 하는 원인을 제거 하자는데 불공정을 들어 반대하는 것을 보고 더 오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지역구 국회의원실을 찾아다니며 법안을 다듬었고 2020년 첫 대광법 개정안을 내놨다. 대표발의자가 이재명정부 첫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취임한 김윤덕 의원이다.

우여곡절 끝에 대광법 적용대상에 전주권을 포함하는 개정안이 지난 4월 빛을 봤다. 김 박사는 “기초자치단체간 생활권 통행을 정부가 처음으로 광역교통의 범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파격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전주를 중심으로 완주·익산·군산·김제 등 자치단체간 도시를 연결하는 광역도로·철도를 정부의 지원으로 건설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실제 전북자치도와 전주시 등은 지난 7월 대광법 관련 토론회를 열고 1조3000억원 규모의 전주권 광역교통시설을 신설하는 내용을 논의했다.

대광법과 충돌하는 도로법 시행령

물론 법이 바뀌었다고 주민이 체감하는 교통관련 시설이 느는 것은 아니다. 내년 초에 확정될 ‘제5차 대도시권 광역교통 시행계획’에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또 500억원이 넘는 사업은 국가재정법에 맞춰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야 한다. 동시에 ‘도로법 시행령’ 개정이라는 또다른 산을 넘어야 한다. 광역교통망과 연계해 대도시권 내부의 차량 혼잡을 해소하기 위한 개선사업에 국가예산 50%를 지원하고 있는데 적용대상을 기존 광역시에서 인구 50만 이상 도시권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대도시권 혼잡도로 개선사업

대도시권 혼잡도로 개선사업

정부가 추진한 대도시권 혼잡도로 개선사업에 전북 전주권은 제외돼 있다. 전북연구원 제공

2007~2025년 대도시권 혼잡도로 321㎞ 개선 명목으로 15조1047억원을 투입했는데 광역시가 아닌 대도시는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다. 대광법 개정안에 맞춰 적용대상을 늘리는 개정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경제성·정책적 필요성에 지역 균형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정부 지원의 길이 열린다”면서 “특히 100% 국가예산이 아니라 지방비 부담이 있는 사업인 만큼 재원 마련계획도 탄탄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북이 정부의 지원에만 매달리는 교통정책의 변방이 아니라 국가 교통정책을 함께 계획하고 성장하는 균형발전의 중심지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됐다”고 했다. 농촌생활권을 30분으로 연결하는 모빌리티 전략에 고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시의 ‘15분 생활권’ 개념을 농촌으로 확장해 주민들이 30분 이내에 병원·학교·상점 등 필수 생활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교통망을 구축하자는 구상이다.

지역소멸 대응 위한 맞춤형 모빌리티 전략

그는 “기본적인 생활 서비스 불균형은 단순하게 살기 불편한 것이 아니라 지역 이탈과 인구 소멸이라는 구조적 위기로 직결되는 사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북연구원이 인구 5만명 이상의 군 지역의 교통시설과 소멸위험지수를 분석한 자료를 내놨다. (소멸위험지수 = 20~39세 여성 인구수÷65세 이상 인구수. 수치가 낮을수록 소멸위험이 높음)

지역소멸 대응 농촌형 모빌리티 전략

지역소멸 대응 농촌형 모빌리티 전략

김상엽 선임연구위원(오른쪽)은 지역소멸에 대응해 30분 농촌생활권을 위한 맞춤형 모빌리티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전북연구원 제공

전국 228개 자치단체 중 절반 이상이 지역소멸 위험지역인데 특히 철도역이 있는 지역의 평균 소멸지수는 0.325, 없는 지역은 0.205였다. 김 박사는 “교통 인프라가 인구 유입과 지역 활력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실증적 근거”라고 주장했다.

인구가 없는 곳에 막대한 금액을 들여 철도를 놓자는 제안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는 “그래서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요응답형 교통(DRT) 여객·물류 융합 자율주행 서비스 등을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100원·1000원 택시가 농촌에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속 불가능이라는 절벽을 앞에 두고 생각의 범위를 확장시켰기 때문”이라며 “농산어촌 오지의 물류 배달과 주민이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여객운수를 통합하는 시범지구를 운영하는 방안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정부의 국토교통부와 농림부가 협력해 ‘30분 농촌생활권 모델’을 추진해 대전환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이명환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