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안정성 위해 단기 국고채 필요”
주요국 중 1년 미만 단기 국채 미발행 국가 ‘한국’이 유일
정부 조달 비용 절감 … 단기금융시장 활성화 제고 기대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인 지니어스법이 통과되고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급증하면서 국내에서도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시 안정성과 유동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만기 1년 미만의 단기 국고채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재 단기 국고채가 발행되지 않는 한국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될 경우엔 준비자산 요건 마련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단기 국고채는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 기능 이외에도 일시적인 재정 자금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을 높이고, 정부의 조달 비용을 절감하며, 단기금융시장 활성화를 제고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불 안정성 위해 준비자산 필요 =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스테이블코인과 단기 국고채’ 세미나에서 “최근 국내에서도 디지털 자산의 안정성 제고를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며 “이를 대비해 단기 국고채 도입을 포함한 적정한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나 자산과의 교환 비율을 고정한 디지털화폐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의 높은 가격 변동성과는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예측 가능성을 제고해 신뢰할 수 있는 가치 저장 수단으로 매우 적합한 디지털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결제와 정산은 법정화폐를 통한 거래에 비해 거래비용과 처리시간이 짧다. 이러한 편의성으로 인해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거래 수단으로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또한 스테이블코인은 프로그래밍이 가능해 스마트 계약을 통한 금융거래의 자동 청산·결제에도 널리 활용된다.
스테이블코인은 지불 안정성과 가치 저장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준비자산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주요 법정화폐 담보 스테이블코인은 유동성 높은 저위험 자산을 준비자산으로 보유한다. 일반적으로 준비자산은 현금, 예금, 단기 국채, 정부 머니마켓펀드(MMF) 등이 활용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은 지니어스법을 통해 발행된 모든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1대1의 비율로 준비자산을 쌓도록 요구했다. 스테이블코인은 “결제 또는 정산을 위해 발행되고 미리 정해진 고정된 금액으로 환매 가능한 디지털 자산”으로 정의하고, 모든 명목 화폐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엄격한 준비금 요건을 의무화했다. 이 중 국채는 만기 93일 미만의 단기국채여야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가장 대표적인 스테이블코인 USDT도 대부분의 준비자산을 단기국채로 보유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가상자산시장 규제안(MiCA)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보유자가 준비자산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의 환매가 가능하도록 준비자산의 유형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기준을 도입했다.
◆단기 국고채 도입시 수요 충분할 듯 = 그런데 한국은 1년 미만의 단기 국고채 발행이 도입되지 않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은 국채 시장이 발달했음에도 1년 미만의 단기 국고채를 발행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라며 “국가재정법상 모든 국채는 총발행액 기준으로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단기 국고채를 도입하면 국채 잔액이 동일하더라도 차환 등으로 발행액은 크게 증가하는 착시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도입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과물 초단기 국고채, 재정증권 및 통안증권 등을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지만 시장의 수요에 부합하는 충분한 공급이 어렵고, 유동성 측면에서 제약이 존재한다. 전체 국고채 잔액 중에 초단기 경과물 국고채의 비중은 평균 1.8%에 불과하다.
국내에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는 경우 무위험 초단기 채권을 준비자산으로 보유하는 데에 제약이 존재한다. 현재 무위험채권의 시장구조 하에서는 단기물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며, 향후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어 단기 무위험채권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는 경우에는 단기물의 수급 불안정이 발생하고 가격의 왜곡 현상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김 연구위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활용 가능한 준비자산을 마련하기 위해 단기 국고채의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기 국고채는 또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으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재정자금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을 높이고, 정부의 조달 비용을 절감하며, 단기금융시장 활성화를 제고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도 기대된다. 때문에 단기국채 도입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다만 단기 국고채 도입을 위해서는 현행 발행 총액을 기준으로 국회 승인을 받는 국고채 발행 한도 제도를 순증액이나 잔액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 시장 수요에 부합하고 글로벌 정합성에 맞는 단기 국고채 상품 구조의 설계 및 효율적인 국채 관리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김 연구위원은 상품 구조 설계와 관련해 1년 만기 단기 국고채를 우선 도입하고, 장기적으로 3·6개월 등 다양한 만기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단기 국고채의 이자지급 방식은 할인채의 형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