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노태우 비자금 겨냥, 독립몰수제 추진
‘범죄수익 은닉법 개정안’ 국회서 간담회
국가폭력 범죄로 대물림된 불법자금을 끝까지 추징하는 ‘독립몰수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은닉 가능성이 제기되는 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신군부 비자금’부터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주장은 11일 국회 박균택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국가폭력범죄를 통한 범죄수익 비자금 환수를 위한 간담회’에서 나왔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박재평 충남대 로스쿨 교수는 “공권력의 조직적 개입 등으로 실체가 드러나기 어려운 국가범죄처럼 기소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며 “독립몰수제는 형사재판이 불가능하거나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예외적·보충적 수단으로 범죄수익을 환수하고, 정의 실현과 피해 복구를 도모하기 위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독립몰수제는 유죄판결이 없더라도 범죄수익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해당 범죄수익을 별도 절차를 통해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행법상 공소시효가 만료됐거나 피의자가 사망해 범죄수익이 상속이나 증여, 유류분 반환 등을 통해 제3자에게 귀속된 경우 실질적 환수가 어렵다. 제3자가 범죄수익임을 알았는지를 검사가 입증해야 하는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도 몰수나 추징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 실질적인 몰수 요건이 충족됐더라도 유죄판결 자체가 불가능하면 몰수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 제도는 유엔 부패방지협약(UNCAC) 등 국제사회에서도 도입을 권고하고 있고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표적인 사례가 ‘신군부 비자금’이다. 전 전 대통령은 2205억원 추징금을 선고받았으나 867억원을 미납했다. 올해 초 정부는 전 전 대통령 자택 소유권 이전 소송에서 당사자 사망을 이유로 패소했다.
노 전 대통령은 추징금 2628억원을 완납하며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지난해 딸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재산분할 소송에서 900여억원의 비자금 흔적이 담긴 ‘김옥숙 메모’가 등장하면서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을 둘러싼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시절인 지난 5월 5.18 기념식에서 “국가폭력 또는 군사 쿠데타 시도는 철저하게 처벌하고 소멸 시효를 없애서 상속자들에게도 민사상 배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또 독립몰수제 도입을 대선공약으로 제시했다.
간담회를 주최한 박 의원은 전·노 두 전직 대통령 사례와 같은 경우도 범죄수익금을 환수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의원은 “반헌법적 국가폭력행위를 자행한 전두환·노태우 등은 얼마인지도 모를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축적했다”며 “그들에게 유죄 판결과 추징이 선고됐지만 비자금의 일부만 환수할 수 있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전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씨는 비자금의 실체를 폭로했고, 노 전 대통령의 자녀 노소영씨는 이혼소송 과정에서 비자금의 실체가 담긴 메모를 법정에 제출했다”며 “그런데도 현행법상 공소 제기가 불가해 그들의 범죄수익을 수사하거나 환수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독립몰수제 도입을 포함한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대표발의했다.
정부도 제도 도입에 긍정적이다. 간담회 토론에 나선 법무부 국제형사과 전성환 검사는 “범죄수익의 해외 유출이 많은데 확정판결까지 기다리면 실효적으로 환수가 어렵다”며 “법무부도 올해 업무보고에 독립몰수제를 반영해 적극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독립몰수제는 미국·영국·독일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태국·페루 등 보편적으로 도입한 필수 제도”라며 “국가폭력범죄 뿐만 아니라 마약·금융사기 등 민생침해 범죄까지 독립몰수제 도입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성필 민주당 부대변인은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몰수법의 취지에 찬성하는 비율은 85%에 달하며, 이 가운데 소급 적용을 통해 원금과 수익까지 모두 적극 환수해야 한다는 응답이 70%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허연식 5.18기념재단 위원은 “과거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 과정에 신군부 비자금에 대한 유의미한 제보들이 있었지만 입법적 한계로 조사에 착수하지 못했다”며 “제대로 된 과거 청산을 지금이라도 실현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국회의 실질적인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두환·노태우 비자금은 확인된 사례가 빙산의 일각”이라며 “재산 몰수에 그치지 말고 비자금 조성·분배·사용·은닉 과정을 철저히 조사하는 특별법이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