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매수’ 개미들, 미국증시 떠받친다
옵션·주식거래 비중 20% 차지
WSJ “변동성 클수록 매수 나서”
올해 초 트럼프정부 관세 혼란으로 시장이 급락했을 때 개인투자자들은 저가에 주식을 매수(Buy the Dip)하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주식은 사상최고치로 반등했고, 밈 주식 거래마저 부활했다. 월가의 전문가들 상당수에게 이는 시장과열의 또 다른 신호다. 특히 대형기술주의 주가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는 상황에서 밈 주식 열풍은 닷컴버블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 “개인투자자들의 이런 끈질김은 근거 없는 낙관론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며 “개미들의 ‘주식 고수익 집착’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고, 이는 고평가된 주식의 가격조정 속도를 완화하는 완충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WSJ에 따르면 저가매수 흐름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이유 중 하나는 투자자 세대의 변화다. 우선 닷컴버블 붕괴나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재앙을 직접 경험한 투자자가 줄었다.
대신 지금의 젊은 투자자들은 첫 증권계좌를 열었을 때부터 대체로 주식상승을 경험했다. 초저금리 시대 주식시장은 시간이 지나면 오르기만 하는 듯 보였다. 초기 투자 시절의 ‘대박 경험’은 이들이 더 큰 위험을 감수하도록 만들었고 시장이 흔들릴 때도 버티게 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를 올리며 S&P500 지수가 19% 떨어졌던 2022년은 저가매수 성향의 시험대였다. 많은 투자자들이 이 시기를 버티며 시장에 남았다. 시장조사업체 EPFR에 따르면 호주머니 상황이 어려울 때 현금을 찾기 위해 주로 매도하던 미국 주식형 뮤추얼펀드와 ETF에 그해 270억달러가 순유입됐다.
버티던 이들에게 곧 보상이 돌아왔다. 2022년 하락 이후 2년 동안 S&P500은 25년 만에 최고의 시기를 기록했다. 최근에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JP모간은 “올해 4월 ‘해방의 날 관세’ 직후 이틀 연속 5% 안팎 급락했을 때도 개인투자자들은 사상 최대 규모로 주식을 매수했다”고 밝혔다. EPFR에 따르면 올해 4월 둘째주 미국 주식형 펀드와 ETF에는 310억달러가 유입됐다. 이달 초에도 미국 고용부진 데이터로 시장이 하락했지만 곧바로 회복했다.
과거엔 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주식형 펀드에서 약 500억달러가 빠져나갔다. 2009년 3월 미국 증시가 바닥을 친 뒤에도 4년 연속 순유출이 이어졌다.
닷컴버블 붕괴 이후에는 S&P500이 다시 사상최고치를 회복하는 데 약 7년이 걸렸다.
현재 주식시장에 남아 계속 투자한 사람들은 포트폴리오가 크게 불어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주식은 주택이나 채권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며 미국인의 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됐다. 지난해 말 기준 증권사 피델리티의 퇴직연금 401(k) 계좌 백만장자 고객은 53만7000명으로 사상최대였다.
주식은 미국 가정의 재무구조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의 에드 클리스올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계 금융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은 36%로, 1950년대 이후 최고치다.
JP모간에 따르면 개인투자자가 차지하는 옵션거래 비중은 최근 전체의 약 20%로, 2021년 밈 주식 열풍 때의 정점을 웃돌았다. 제퍼리스 집계에 따르면 주식거래량 비중도 약 20%로, 2010년 대비 2배 수준이다. 자산운용사 찰스 슈왑에 따르면 자사 고객의 약 80%가 앞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주식을 매수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미국 투자회사 로이트홀트그룹 전 수석 전략가 짐 폴센은 “성공 경험이 사람을 대담하게 만든다. ‘이 정도 조정은 버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WSJ는 “물론 모든 강세장은 끝이 있다. 그리고 그 시점의 밸류에이션이 높을수록 충격은 더 클 수 있다”며 “하지만 투자심리에 실질적인 변화가 생겼다면, 시장 하락 시 손실을 줄이는 ‘숨은 완충장치’가 될 수 있다. 과거 공매도 세력이 그랬듯, 오늘날 새로운 투자자 세대는 다른 사람이 팔 때 매수에 나설 수 있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