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MAGA 특허’ 폭풍 온다
①트럼프 ‘강한 IP’ 추진…세수확보·산업보호 전략
골드만삭스 출신 특허청장 지명 … 3대 특허법 강화 추진
특허가치 최대 5% 수수료 부과 검토, 기업 비용급증 예상
미국정부 특허소송 직접 개입 … IP도 미국우선주의 전략
미국 트럼프정부가 ‘강한특허’로 무장한다. 특허수수료를 인상해 세수를 확보하고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미국정부가 특허소송에 직접 개입하기도 한다. 일방적 관세인상에서 확인된 미국우선주의(MAGA) 전략이 특허정책에도 관통하는 셈이다.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트럼프정부는 특허수수료를 대폭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수수료 부과방식은 정액제다. 특허권자들은 정부에 특허등록 기간에 따라 매년 일정액을 납부하고 있다. 보통 수천달러에서 최대 8280달러(특허등록 11.5년차)다. 미 정부가 고려하는 새로운 방안은 비례요율제다. 특허가치를 기준으로 1~5%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WSJ는 “새로운 수수료를 도입하면 일부 특허권자들의 부담이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내에서는 미국에 등록된 특허가치를 수조달러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수수료 부과방식이 바뀌면 수천억달러의 세수를 거둬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혁신의 결과에 사실상 재산세를 부과하는 셈이다.
◆혁신의 결과에 재산세 부과 = 실제 미국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다. 글로벌기업들은 미국시장을 독점하려 매년 수많은 특허를 앞다퉈 등록하고 있다. IP5(세계 5대 특허청협의체)에 따르면 2024년 미국 특허등록은 미국(14만4044건)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유럽연합이 4만7617건으로 2위를 차지했다. △일본 4만2079건 △중국 2만9798 △한국 2만3219건 순이었다.
미국의 특허분석 전문기업 IFI클레임스은 지난해 미국특허의 절반 이상(56%)을 해외기업이 등록한 것으로 평가했다. 삼성전자가 6377건으로 3년 연속 1위에 올랐다. △TSMC △퀄컴 △애플 △화웨이 △LG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순이다.
결국 새로운 특허수수료 방식은 한국기업에 매우 불리하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 5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제도개편이 현실화하면 한국기업의 미국 내 특허 유지비용이 9.9배 급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한국기업들의 특허권 수수료는 2억7000만달러(약 3750억원)다. 지난해 미국특허청(USPTO)이 거둬들인 수수료(36억5000만달러)를 한국기업의 특허등록 비중(7.3%)으로 계산한 결과다. 김 연구원은 “모형을 단순화하기 위해 특허가치를 USPTO 수수료 수입의 10년치로 가정한다면 특허가치를 고려한 특허권 1건의 수수료 비용은 11만5000달러(약 1억6000만원)이고 한국기업의 수수료 인상비용은 26억6000만달러(약 3조7000억원)로 산출된다”고 진단했다. 미국 특허제도 개편이 현실화되면 한국기업은 현재의 9.9배에 해당하는 비용부담을 안게 되는 셈이다.
◆이례적으로 빠른 청장 지명 = 아직 특허가치 평가기준이나 수수료 부과시점 등 중요한 특허제도 개편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다. WSJ에 따르면 USPTO 관계자들은 초안 제안서와 재정 모델을 회람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미국이 특허제도 개편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상공회의소 산하 글로벌혁신정책센터(GIPC)의 브래드 와츠 부사장은 WSJ에 “특허제도 개편은 지식재산권 보호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방식 전환”이라고 밝혔다.
이례적으로 빠른 USPTO 청장 지명에서도 확인된다.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3월 10일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이자 골드만삭스 출신인 존 스콰이어스를 USPTO 차기 청장으로 지명했다. 제도개편을 주도한 특허청장을 대통령이 취임 후 2개월만에 내정했다. 미국에서 특허청장은 보통 여름이나 가을에 지명돼 다음해 취임하는 게 관례였다.
스콰이어스 후보자는 5월 21일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특허제도 문제점을 지적하며 ‘강한 특허’를 통한 ‘국가안보 강화’를 주창했다. 그는 “특허 적격성의 불확실성이 미국 경쟁력을 해치고 있으며 중국의 특허제도가 미국보다 더 넓은 보호범위를 가지고 있어 우려스럽다”고도 했다.
스콰이어스 후보자는 특허권자 보호를 강화하는 3대 법안에 대한 지지도 분명히 했다. 3대 법안은 올해 안에 입법을 완료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허강화 3법은 △특허무효소송(IPR)을 제한하는 프리베일(PREVAIL) 법안 △특허 침해자에게 금지명령을 의제하는 리스토어(RESTORE) 법안 △특허 대상의 법적예외를 없애는 페라(PERA) 법안 등이다. 3대 법안은 상·하원 합동으로 발의돼 현재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다.
미국 내에서는 3대 법안이 미국 특허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특허전문 매체 IP와치독은 “트럼프 행정부가 특허권자에게 금지명령, 심지어 예비적 금지명령까지 허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허가치 평가 불확실 = 미국의 특허강화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지난 5월 정부 변호사 10명은 특허괴물로 불리는 특허수익화전문회사(NEP) 라디언메모리시스템즈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에 개입했다.
이들은 “(삼성전자에 대한) 예비금지조치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텍사스 동부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예비금지조치는 본안소송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침해가 계속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임시 금지명령이다.
우리나라의 가처분에 해당한다. 이 변호사들은 미국 법무부 반독점부서와 특허청을 대표한다. 정부가 라디언메모리를 지지한 모습이다. 라디안메모리시스템즈가 7월 10일 특허소송을 취하했지만 미국 특허강화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지 보여주는 일례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트럼프정부의 IP보호 강화가 특허가치 평가의 불확실성을 높일 가능성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IP보호 강화는 중국견제 전략이기도 해 한국기업에게는 위기와 함께 기회이기도 하다”고 덧붙혔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