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유니콘’ 더이상 꿈만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 “AI 덕분에 혼자서 창업하고 성장시키는 시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1인 유니콘’ 탄생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즉 기업가 혼자 창업해 1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는 비상장 스타트업이 곧 나올 수 있다는 것. 생성형 인공지능(AI) 덕분에 창업 비용을 크게 낮추고 번잡한 업무를 일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일 영국 이코노미스트 온라인판은 미국 여성 사라 귈리엄(Sarah Gwilliam)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아니지만, 최근 부친이 사망한 후 자신처럼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 고인의 업무 정리를 도와주는 생성형 AI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른바 ‘장례식 웨딩 플래너’다.
그가 만든 기업 ‘솔리스(Solace)’는 초기 단계 스타트업이다. 귈리엄 본인을 제외하면 회사를 만드는 데 관여한 ‘사람’은 거의 없다. AI 기반 창업인큐베이터 ‘오도스(Audos)’가 그의 아이디어를 유망하다고 판단해 참여했을 뿐이다. 오도스의 봇들(bots)이 웹사이트와 인스타그램 계정을 세팅했다.
창업 아이디어가 성공하면 오도스는 자본을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제품 개발·영업·마케팅·백오피스 업무까지 AI 에이전트로 지원한다. 그 대가로 로열티를 받는다. 직원 채용은 필요없다. 사실상 AI가 공동창업자가 된 셈이다. 귈리엄은 이코노미스트지에 “정말 힘이 나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기술혁신은 기업 운영방식을 크게 바꿔왔다. 19세기 말부터 거대기업이 등장했다. 규모의 경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통신이 확산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기업은 제조나 백오피스 업무를 저비용 국가에 아웃소싱할 수 있게 됐고, 마케팅은 구글 같은 인터넷 플랫폼에, 컴퓨팅은 아마존웹서비스(AWS) 등에 의존할 수 있었다.
AI의 급부상은 이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제공하는 AI 에이전트를 활용하면 훨씬 적은 인원으로도 동일한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도스를 공동 설립한 헨릭 베르델린(Henrik Werdelin)은 “지난 20년간 클라우드 컴퓨팅 덕분에 신용카드 1장만으로 여러 회사를 손쉽게 창업했다”고 말했다. 그는 AI를 ‘창업 민주화’의 도구로 인식한다. 그는 “코딩을 몰라도, 포토샵을 쓸 줄 몰라도, AI가 다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오도스는 기술 배경이 없어도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에게 스타트업을 세울 기회를 제공한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카림 라카니 교수도 AI 전도사다. 그가 가르치는 임원 대상 리더십 과정은 생성형 AI를 이용해 90분 만에 ‘스낵 회사’를 만드는 실습을 제공한다. 참가자들은 AI로 소비자 조사와 레시피 개발, 공급업체 발굴, 패키지 디자인까지 해낸다. 라카니 교수 연구팀이 프록터앤드갬블(P&G) 직원 77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는, AI를 사용한 개인 참가자의 성과가 AI 없이 두 사람이 팀을 이뤄 일한 성과와 맞먹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AI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실상 ‘팀원’ 역할을 한 것”이라고 전했다.
스타트업 지분 관리 플랫폼 ‘카르타(Carta)’의 피터 워커는 “예전에는 직원 수가 많은 게 자랑이었지만 이제는 ‘우리 회사는 직원이 이만큼이나 적다’고 말하는 게 훈장”이라고 말했다. 카르타에 따르면, 법인 설립 후 첫번째 채용에 나설 때까지 걸리는 중간값이 2022년에는 6개월(180일) 미만이었지만 2024년에는 9개월(270일) 이상으로 늘었다. 최근 AI 네이티브 코딩 스타트업 ‘베이스44(Base44)’는 직원이 8명에 불과한 데도 웹 개발 플랫폼 ‘윅스(Wix)’에 8000만달러(약 1100억원)에 인수돼 화제를 모았다.
물론 아직은 초기 단계다. AI 에이전트가 완벽한 건 아니다. 걸림돌도 분명하다. 생성형 AI는 창업 장벽을 낮추지만 동시에 아이디어 모방도 쉽게 만든다. 영국 서리대학교 애너벨 가워 교수는 “창업자가 독자적인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AI 도구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투자한 오픈AI, 아마존·구글이 투자한 앤스로픽 등 소수 빅테크와 이들이 투자한 연구소가 장악하고 있다. 이는 2010년대 클라우드 컴퓨팅 확산 흐름과 비슷하다. 아마존·MS·구글 ‘클라우드 3대장’은 스타트업을 돕는 동시에 자사에 대한 이들의 의존도를 크게 높였다. 이들 3사의 지난해 순이익은 미국 전체 기업 순이익의 7%로, 10년 전 2%에서 급등했다.
빅테크가 소기업의 괜찮은 아이디어를 빼앗는 경우도 다반사다. 하지만 솔리스의 귈리엄은 담담하다. 그는 “선발자 불이익이 안타까울 수 있지만 오히려 아이디어를 입증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며 “빅테크가 솔리스를 사고 싶다고 하면 나는 ‘좋다, 팔겠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