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등진 인도, 중국에 손내밀다
모디, 직항편 운항 재개 등 러브콜 … 브릭스 결속 강화로 트럼프에 맞대응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보내는 신호는 명확하다.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모디 총리는다음 달 중국과의 직항편 운항 재개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르면 8월 31일 톈진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주 앉을 예정이다. 모디가 중국 땅을 밟는 것은 무려 7년 만이다.
양국 간 직항편은 코로나19와 함께 히말라야에서 벌어진 국경 충돌로 완전히 끊긴 상태였다. 당시 인도군 20명과 중국군 다수가 목숨을 잃으며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모디의 계산법이 바뀐 결정적 계기는 트럼프의 일방적 관세 폭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문제 삼아 인도산 제품 관세를 두 배인 50%로 급인상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트럼프가 인도 경제를 ‘죽었다’고 단언하고 관세 장벽을 ‘역겹다’고 표현한 발언은 양국 관계에 결정타를 날렸다.
아이러니한 것은 모디가 그동안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치켜세우며 그의 백악관 복귀 직후 첫 외국 정상 중 하나로 미국을 찾았다는 점이다. 최대 교역국으로부터 받은 이런 배신감은 모디로 하여금 전략적 선택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중국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다. 세계 최대 비료 수입국인 인도에 대한 요소 비료 수출 제한을 최근 완화한 것이다. 초기 물량은 제한적이지만 향후 거래 확대 시 글로벌 공급난 해소와 가격 안정에 상당한 도움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지난 6월 다른 국가들에 대한 금수 조치를 일부 풀었지만, 인도에 대해서는 이번에 빗장을 열었다.
재계도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아다니 그룹은 중국 비야디(BYD)와 손잡고 인도 내 배터리 생산과 청정에너지 사업 확대를 적극 검토 중이다. 모디 정부 역시 수년간 지속된 제재 조치를 풀고 중국인 관광비자 발급을 재개했다.
현실적 이해관계도 작용했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인도의 제2 교역국이며, 인도 제조업의 핵심 부품 상당 부분이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은 아니다. 오랜 경쟁국이었던 두 나라가 단기간에 완전한 신뢰를 회복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최근에도 중국이 파키스탄에 무기와 정보를 제공하며 인도와의 군사 갈등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새로운 마찰이 불거지고 있다.
트럼프의 대인도 불만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인도가 그의 ‘파키스탄과의 긴장 완화 중재’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지난 6월 모디가 전화 통화에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점이다. 뉴델리 당국자들은 그 이후 백악관의 어조가 확연히 달라졌다고 전했다.
모디의 전방위 외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브릭스 창립국인 브라질,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8월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인도로 초청할 예정이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자금원이 되는 러시아산 할인 원유 수입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지만, 모디 정부는 오히려 이달 모스크바와 경제협력 확대 합의를 체결했다.
브라질과의 연대도 강화되고 있다. 모디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양국 간 무역 및 일방적 관세 부과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지난 7월 브라질리아 방문 때도 상업적 유대 강화에 초점을 맞췄고, 8월 초 통화에서는 남미 관세동맹 메르코수르와 인도의 무역협정 확대에 합의하는 성과를 거뒀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오랫동안 공들여온 인도를 잃을 위기에 처한 셈이다. 트럼프의 무역전쟁 속에서 중국과 인도가 공감대를 넓혀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쉬페이훙 주인도 중국대사는 관세 문제에서 모디를 적극 지지하며 지난주 소셜미디어 X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발언을 인용했다. “관세를 다른 나라를 억압하는 무기로 사용한다”며 “한 번 물러서면 계속 밀린다”는 메시지로 양국의 결속을 과시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