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기른 가축 12종이 지구 생태계를 바꿨다

2025-08-18 13:00:11 게재

수만 년 자연질서 무너뜨려

미래 생물다양성 영향 예측

인간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한 뒤 지구 포유류 분포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소 양 돼지 등 가축들이 인간 손을 타고 다른 지역으로 퍼지면서, 수만 년간 기후와 지형에 따라 형성된 대륙별 야생동물 군집 경계가 크게 변화했다. 원래 동물들은 기후 지형 바다 등 자연적인 조건에 따라 대륙별로 비슷한 종류끼리 모여 살았지만 인간 활동이 이 유형을 뒤바꿔 버렸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18일 국제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Biology Letters)’의 논문 ‘홀로세 인간 활동이 후기 플라이스토세 동물군집 유형을 파괴하다(Late Pleistocene faunal community patterns disrupted by Holocene human impacts)‘에 따르면, 홀로세 시대 인간의 농업 활동과 가축화가 포유류 군집의 전 지구적 분포 유형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했다. 자연 상태에서 약 10만 년에 걸쳐 형성된 생물지리학적 경계를 인간이 몇천 년만에 가축 12종으로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아주 쉽게 설명하면 전세계 각 나라가 고유한 전통 음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패스트푸드 메뉴 12개가 세계로 퍼지면서 갑자기 모든 나라 음식이 비슷해진 셈이다.

연구진은 후기 플라이스토세와 홀로세의 포유류 화석 자료를 비교 분석했다. 플라이스토세 자료는 191개 지역의 475종을, 홀로세 자료는 206개 지역의 350종(가축 12종 포함)을 포함했다.

연구진은 이들 자료를 두 가지 방법으로 분석했다. 하나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지역끼리 묶는 기존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체이스 클러스터링(chase clustering)’이라는 새로운 기법이다. 체이스 클러스터링은 지리적 거리와 관계없이 순전히 동물 종 구성의 유사성만으로 지역들을 분류한다.

분석 결과, 후기 플라이스토세 시대에는 두 방법 모두 알려진 생물지리학적 경계와 일치하는 대륙 규모의 군집 유형을 보였다. 아메리카 대륙이 다른 지역과 구분됐고 아프리카는 유라시아와 밀접하게 연결됐다. 호주와 동남아시아는 △유럽 △아시아 북부 △북아프리카 일부를 포함하는 생물 지리 구역(구북구)과 분리됐다.

하지만 홀로세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인간의 토지 이용과 가축화가 이전의 역사적 유형을 재구성해 기존 생물지리학적 제약과 무관한 새로운 군집을 만들어냈다. 특히 가축을 포함한 분석에서는 지역 분류 유형(클러스터 구조)이 달라졌다.

연구진이 야생종만을 대상으로 한 분석과 가축을 포함한 분석을 비교한 결과, 두 결과 간 일치도가 중간 수준(조정된 랜드 지수(ARI) 0.433)에 그쳤다. 이는 가축이 홀로세 군집 유형을 상당 부분 재구성했다는 뜻이다.

홀로세 자료 350종 중 12종이 가축이었는데, 이들은 206개 지역 중 110개 지역(약 절반)에서 발견됐다. 지역당 평균 1.47종의 가축이 존재했다. 34개 공통 지역에서 후기 플라이스토세에서 홀로세로의 종 교체율을 분석한 결과, 지역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뉴기니와 스리랑카는 최소한의 교체율을 보였다. 서유럽과 동아프리카는 중간 수준의 교체율을 나타냈다.

가장 높은 교체율을 보인 지역은 △아메리카 대륙 △호주 △동유럽 △아시아 일부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 등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후기 플라이스토세의 상당한 대형동물 멸종에 이어 라마와 알파카 같은 토착 포유류의 지역적 가축화가 이루어져 유럽 가축 도입 훨씬 이전부터 동물군 군집을 재편했다.

이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가축화된 종들이 널리 퍼지면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들 간에 새로운 구성적 유사성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한 예로 중동에서 기원한 가축들이 확산되면서 유럽과 아프리카의 포유류 군집 구성이 비슷해졌다.

또한 홀로세 자료에서 가축들을 제외하고 다시 분석해 보니 일부 지역의 동물 구성이 후기 플라이스토세 시절과 유사해졌다. 이는 소수의 가축이 전체 생태계 유형을 좌우할 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뜻이다.

물론 이 연구는 화석 자료를 활용해 종의 존재 여부만 보여줄 뿐 개체 수 변화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는 인간이 주도한 농업과 자원 채취 등이 전 지구 포유류 군집 구조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재편했는지를 보여준다. 연구진은 현재와 미래의 인간 활동이 생물다양성에 미칠 파급효과를 예측하는 데 이번 연구가 중요한 맥락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후기 플라이스토세와 홀로세 = 후기 플라이스토세(약 12만9000~1만1700년 전)는 매머드와 검치호랑이가 살던 빙하시대 말기다. 기후와 지형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대륙별 동물군집이 10만 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시기다.

홀로세(1만1700년 전부터 현재까지)는 빙하기가 끝나고 인류가 농업을 시작해 소 양 돼지 등을 길들이며 본격적인 문명을 건설한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대다. 이 두 시대의 경계는 단순한 시간의 구분이 아니라 ‘자연 주도 생태계’에서 ‘인간 주도 생태계’로의 근본적 전환점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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