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분인수설에 인텔 주가 급등

2025-08-18 13:00:01 게재

트럼프 정부 투자로 미국내 공장 확장 가속 … 국가와 산업의 경계 허문다

인텔 CEO 립부 탄이 4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열린 회사의 연례 제조기술 컨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반도체 기업 인텔에 직접 지분투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인텔 주가가 연일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7월 미국 정부가 희토류 기업 MP머티리얼즈에 4억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또 다른 대규모 투자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14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인텔 주가는 7% 이상 상승 마감한 데 이어 15일에도 3% 가까이 오르며 투자자들의 기대를 반영했다.

이번 논의는 블룸버그가 처음 보도했으며, 이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가 추가로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업 경영에 직접 개입하는 이례적 조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백악관에서 인텔 최고경영자(CEO) 립부 탄과 만나 지분투자 가능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도 동석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탄 CEO가 중국 반도체 기업들과 얽힌 이해관계로 인해 “심각한 이해상충에 놓여 있다”며 사임을 요구했지만, 이번 만남 이후 탄의 경영 경로를 두고 “대단한 이야기”라고 표현하며 태도를 바꿨다.

이 논의의 핵심 배경은 인텔의 오하이오주 반도체 공장 재건이다. 인텔은 2022년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단지를 짓겠다고 발표했으나, 공정 지연과 비용 부담으로 가동 시점이 2030년 이후로 미뤄졌다. 정부 자본 투입은 이 프로젝트를 되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민간기업 지분을 직접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초 일본제철의 미국 철강기업 U.S.스틸 인수 과정에서 정부는 ‘황금주(golden share)’를 확보해 주요 경영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또 엔비디아와 AMD는 중국 수출 허가를 받는 조건으로 중국 내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이 같은 일련의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 제조업’ 구상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정치적 영향력을 기업 경영에 직접 투영하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인텔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최근 몇 년간 엔비디아, AMD, TSMC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주가가 반 토막 났다. 2분기 손실은 29억달러에 달했고, 독일·폴란드 생산 프로젝트를 철회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지난달에는 전체 인력의 15% 감축을 발표하며 생존을 위한 고강도 비용 절감에 나섰다.

전임 CEO 팻 겔싱어의 공격적인 제조 투자 전략은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했고, 결국 지난해 말 해임됐다. 후임으로 선임된 탄 CEO는 실리콘밸리에서 오랜 투자 경험을 쌓았지만, 중국 기업 투자 이력으로 백악관의 비판을 받아왔다.

월가에서는 정부의 직접 지분투자가 단기적으로는 인텔의 자본 확충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노후화된 사업 모델과 인공지능 시장에서 뒤처진 제품 라인업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 탄 CEO에게 사퇴를 요구했다가 불과 며칠 만에 협력 관계를 시사한 것은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탄 CEO가 중국 투자와 연관된 논란에 휘말리자,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 강경파를 달래는 동시에 인텔을 활용해 자국 반도체 제조 기반을 강화하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FT는 이를 두고 “백악관이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실험에 나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현재 논의가 초기 단계이며 무산될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러나 인텔 지분투자 논의는 정부가 전략 산업에 대해 기존 보조금이나 규제 이상의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이는 MP머티리얼즈에 대한 투자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가 민간기업 경영에 점점 더 깊숙이 개입하는 전조로 평가된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양현승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