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평화 논의 앞두고 분주한 유럽
트럼프에 ‘공정 협상’ 압박
휴전 우선·영토 불가침 주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우크라 평화 협상에 대해 유럽연합(EU)과 주요 유럽국들이 긴장감 속에 대응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릴 다자 정상회담을 앞두고 유럽은 자칫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조건이 강요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외교력을 총동원하는 모습이다.
17일 열린 화상 회의에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등 주요 국가 정상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푸틴-트럼프 회담 이후의 정세를 점검하고 백악관 회담을 앞둔 공동 입장을 조율했다.
세계의 이목이 미국과 러시아의 직접 담판에 쏠린 상황에서 유럽은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평화’라는 가치로 중심을 잡으려 하고 있다.
유럽의 기본 입장은 명확하다. 첫째, 푸틴의 요구대로 ‘즉각 평화 협상’에 들어가기보다 전투 중단과 인도주의적 휴전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어떤 방식으로도 무력에 의한 영토 변경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우크라이나 주권은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미국이 안보 보장 논의에 참여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국경은 힘으로 바뀔 수 없다는 우리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 역시 “유럽 없이 유럽 안보 논의는 있을 수 없다”며 미국 주도의 협상 구도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특히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선(先) 휴전 없이 바로 평화 협상으로 직행하기로 한 결정을 우려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무기의 위협 아래에서 협상할 수 없다”며 이 같은 흐름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번 백악관 회담에 유럽 주요국 정상이 대거 참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외교적으로 뒷받침하고, 미국이 러시아에 유리한 협상안을 강행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려는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는 단결된 전선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고, 폴란드와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도 ‘휴전 우선’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EU 내부에서는 미국이 구상 중인 ‘나토식 안보 보장’이 실질적인 억지력을 가지려면 유럽과 미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집단 방위 체계여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실제 병력 배치, 정보 공유, 공중 감시 등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유럽의 이런 움직임은 협상 과정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한 방파제’ 역할을 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참여가 역사적이라면 유럽의 연대는 실용적이다”라고 평가하며 유럽과의 협조를 강조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