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회사채 90% 트리플A…등급 인플레 심화
시진핑정부의 안정 우선 기조 반영
신평 부풀리기에 “신뢰 하락” 비판
중국에서 새로 발행되는 회사채의 거의 전부가 최고 등급(트리플 A)을 받고 있다. 이는 장기간 이어져 온 구조적 흐름이지만 최근에는 중국정부가 부도 리스크 높은 기업을 회사채 시장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더욱 심화됐다는 분석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 골드만삭스와 중국 데이터 제공업체 ‘윈드(Wind)’ 데이터를 인용해 “올해 상반기 발행된 중국 기업 회사채 가운데 90%가 트리플A 등급을 받았다. 이는 2008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비율”이라고 전했다.
2016년까지만 해도 트리플 A를 받은 회사채는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등급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됐다는 지적이다. 중국 런민대 덩카이화 교수는 “장기적으로 신용등급 부풀리기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본토 회사채 시장에서 올해 들어 부도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부동산 업계 위기가 4년째 이어지고 있고 미·중 무역 긴장이 심화되고 있지만 중국정부가 ‘안정’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신용리서치기관 ‘크레딧사이츠(CreditSights)’의 아시아 신용전략 총괄 제를리나 젱은 “중국정부가 신용등급이 AA 이하인 지방정부의 자금조달용 특수법인(LGFV)이나 부실 민간기업 등이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다”며 “정부는 부도를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국 내 신용평가는 대부분 국영 색채가 짙은 현지 평가사들이 맡는다. 중국인민은행은 수십개 신용평가회사를 등록제로 운용한다.
런민대 덩 교수는 “트리플A 비중 확대가 신용도 개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만약 채권의 질이 정말 좋아지고 있다면 금리가 하락했어야 한다. 투자자들은 바보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국채 대비 회사채 금리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
기업들은 여러 신평사를 오가며 더 좋은 등급을 얻으려 한다. 국유기업보다 차입 비용이 높은 민영기업일수록 이런 ‘등급 쇼핑’ 경향이 강하다.
중국 신용등급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시장과 격차를 더욱 벌려왔다. 주요 선진 채권시장에서는 트리플A를 받는 기업이 극히 소수인 것과 대비된다. FT 분석에 따르면 2022년 이후 중국 주요 회사채 가운데 A- 이하 등급을 받은 사례는 전무하다.
중국에서 첫 회사채 부도는 2014년 발생했다. 당시 중국정부는 국유기업 중심의 시장을 개혁한다며 부도를 용인했다. 하지만 이후 수년간은 오히려 국유기업들에 대한 상환 압박을 완화하며 ‘부도 회피’를 장려했다.
그러다 2020년 국영기업 융청석탄전기가 트리플A 등급임에도 부도를 맞자 중국 신용평가의 신뢰성은 큰 타격을 입었다. 런민대 덩 교수는 “중국정부도 신용등급이 부풀려져 있고, 더블A 미만 회사채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신용평가 시장은 피치와 무디스, S&P글로벌이 장악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현지 평가사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이에 따라 무디스는 2022년 중국 내 분석사업을 철수했고 현지 평가사 지분만 소수 보유 중이다. 피치와 S&P는 중국에 100% 자회사 형태로 진출했지만 여전히 주변적 존재에 그친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