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불 앞에 선 과학자들

2025-08-19 13:00:03 게재

최근에 과학산책 집필진과 모임이 있었다. 물리 분야의 교수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네이선 미어볼드(Nathan Myhrvold)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스티븐 호킹과 양자물리학을 연구한 천재 물리학자이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세계 최대 특허전문기업 인텔렉츄얼 벤처스 설립자였지만 1999년 은퇴 후 ‘모더니스트 퀴진(Modernist Cuisine)’이라는 6권으로 구성된 요리 백과사전을 펴낸 사람이다.

이 책은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 올해의 요리책 상까지 수상했다(그 책을 온라인으로 외국 사이트에 주문했으나 배송이 아직도 안되고 있다). 여하튼 나는 그저 천재들의 오지랖인가 하는 생각으로 그를 ‘괴짜’라고 단정하고 지나쳤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Richard P. Feynman)은 한밤중 컴퓨터 과학자 대니 힐리스(Willam D. Hillis) 와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중 스파게티의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마른 스파게티 면을 양 끝에서 잡고 부러뜨리면 거의 항상 세 조각 이상으로 부러지며 작은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간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겐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이 그에겐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았다. 결국 이 사실의 과학적 규명은 그의 사후 30년이 지난 2018년 MIT와 코넬대학 학생들이 해결했다. 이는 건축물과 공학 부재의 파괴 제어, 나노 생체재료의 설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게 되었다.

과학자들이 요리에 매료되는 이유

물리화학자 에르베 티스(Hervé This)와 옥스퍼드대 물리학자 니콜라스 쿠르티(Nicholas Kurti)는 1988년 ‘분자요리학(molecular gastronomy)’이라는 요리의 신분야를 공동으로 창시했다. 에르베 티스는 화학 물리학 생물학 연구를 주방에 도입해 전통적인 요리와 식사개념에 도전했으며 분자요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노벨화학상 수상자 장마리 렌(Jean-Marie Lehn)과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피에르질 드 젠(Pierre-Gilles de Gennes)의 지지를 받으며 연구를 발전시켰다. 에르베 티스의 과학적 실험은 스페인의 천재 셰프 페란 아드리아(Fernando Adrià Acosta)의 경력을 견인했고, 분자요리학의 과학적 기반이 되었다.

이외에도 고분자 물리학자인 피터 바햄(Peter Barham), 의사경력을 가진 스튜어트 파리몬드(Stuart Farrimond) 모두 전문 과학적 지식을 요리와 음식에 적극 적용한 사람들이다. 거꾸로 요리사로서 과학적 사실을 적극 활용해 유명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페란 아드리아, 르네 레드제피(René Redzepi), 호세 안드레스(José Andrés), 데이브 아놀드(Dave Arnold) 등 검색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등장했다.

주방은 곧 거대한 실험실이다. 빵을 굽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은 유기화학과 물리화학의 정수를 보여주며 빵의 고소함과 색을 결정한다. 달걀흰자가 거품이 되는 현상은 표면장력과 콜로이드 화학의 원리로 설명되고, 스테이크 구이의 열전달은 열역학의 기본법칙들이 실시간으로 적용되는 현장이다. 김치나 치즈, 와인의 발효는 미생물학과 생화학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다.

과학자들이 식품에 매료되는 핵심 이유는 결과를 즉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초과학 연구에서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해 결과를 얻기까지 수개월, 때로는 수년이 걸릴 수 있으나 요리에서는 몇 분에서 몇 시간 안에 이론이 현실로 구현된다.

현대에도 식품산업은 첨단 과학기술이 집약된 분야다.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맞춤형 식품 제조, 인공지능을 활용한 맛의 예측과 조합, 나노기술을 이용한 영양소 전달 시스템 등 최신 과학기술이 식품 분야에 적용되고 있으며, 셰프와 과학자가 협업해 창조하는 미래 음식문명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

요리도 과학, 창의적 도전 기회 제공해야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국내외 식품 관련 교육과 산업 현장에서는 아쉬운 점들이 많다. 조리 분야는 단순한 기능습득에만 매몰되어 있고, 식품 관련 교육은 자격증 취득을 위한 암기 위주로 진행된다.

과학자들이 요리에서 발견한 그 흥미진진한 지적 모험과 창의적 도전의 기회를 우리 교육 현장에서도 제공해야 한다. 조리대를 실험실로 삼아 그 앞에 선 수많은 과학자처럼 식품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서 새로운 발견과 창조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가장 과학적인 영역인 ‘불’ 앞에서 인류를 더욱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진정한 융합교육의 모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기명 푸도슨트식품연구소 연구소장 식품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