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광복 80년, 일제로부터의 독립과 미국에 대한 자주
광복 80년이다. 그날의 환희와 희망은 8월의 무더위도 무색하게 했으리라. 이재명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다시 읽어본다. 3년 만에 어떤 ‘정상성’을 되찾은 것 같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좀처럼 사라질 줄 모르는 답답한 느낌이 있다. 일제의 패망으로 독립은 이루어졌지만 이후 진정한 자주국가가 되었는가. 짧은 기간에 경제적 고도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자랑 뒤에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분단체제에서 미국에 경제와 안보가 구조적으로 종속된 현실에 대한 부끄러움이 버티고 있지 않는가.
통일 없이는 진정한 독립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조선이 일제에 병탄되기 전에 분단상태가 아니었기에 해방된 조선도 당연히 하나라야 한다는 논리로 생각할 수 있다. 분단이 외세에 의해 결정된 사실이 그런 논리를 뒷받침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관계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진정한 독립의 더 본질적인 요건은 완전한 주권 즉, ‘자주성’일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자. 오늘날 자주의 문제는 결국 미국에 대한 것이다. 처음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은 한국(한반도)전쟁을 통해 ‘연합군’이 되었다. 분단체제는 한미동맹체제에 의해 유지되고 강화되었다. 명분은 평화와 안보였지만 전쟁만 없었을 뿐이고 불안한 안보라는 형용모순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안보의 구조적 대미종속 심화할 우려
지난 7월 말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타결’된 후 즉각 안보문제가 테이블에 올랐다. 8월 25일로 예정된 이 대통령의 방미와 한미정상회담은 관세협상의 세부사항을 확인·확정하고 아마 그보다 더 중요한 ‘한미동맹 현대화’에 대한 방향을 설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말을 직접 한 적이 없지만 그의 참모들과 고위관리와 군지휘관들은 지난 두어달 동안 끊임없이 거론해 왔다.
'현대화’가 한미동맹이라는 특별한 대상에 적용될 경우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한국에게 치명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 한미동맹 현대화 논의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다면 돈과 전략이다. 돈 문제는 트럼프가 1기 때부터 계속해 온 주한미군 주둔비의 대폭인상 주장에서 시작됐다. 최근 미국이 나토와 일본 등의 동맹국에게 제시한 방위비의 GDP 대비 5% 지출 ‘강요’를 한국에게도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전략문제는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를 요한다. 탈냉전 시대를 맞아 미국은 2000년대 초 해외주둔군 재배치를 추진했으며 주한미군도 그에 따라 변화했다. 노무현정부에서 이미 주한미군이 군사적 필요에 따라 한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전략적 유연성’이 존중(인정)되었다.(2006년 1월 한미 외교장관 공동성명).
20여년이 지나 미국의 전략은 또 한번 크게 변했다. 이번엔 중국에 대한 전방위적 봉쇄라는 확고한 지전략적 목적을 위해 주한미군의 역할이 변화하고 그에 따라 대만문제 등과 관련한 한국의 전쟁 연루 위험성이 한층 더 커지고 있다. 여기에 주한미군 규모의 변화와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환수문제도 복잡하게 얽혀 안보의 구조적 대미종속이 심화할 위험성이 우려된다.
19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에 클라우제비츠는 군사학의 고전이 된 '전쟁론'에서 ‘전쟁의 3위일체’론을 제시했다. 전쟁은 군대만이 아니라 정부와 국민의 총력을 결집해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디 전쟁뿐이랴. 평화와 안보를 위한 모든 국가정책에서 그렇다. 75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한미동맹이 거의 종교화한 한국에서 자주라는 말은 금기어가 되다시피 했다. 정치인 관료 군대 언론 대중, 대통령도 예외없이 모두 끊임없이 한미동맹 강화라는 ‘신앙고백’을 강요당해 왔다.
자주의 길, 정부와 군과 국민이 힘 합쳐야
이 대통령은 며칠 후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어쩌면 ‘진실의 순간’을 맞이할지 모른다. 국익과 실용이라는 완전한 외교원칙과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모든 현안에 대한 안전한 접근법이 처음으로 어려운 시험을 치르게 될 것이다.
사실 정상회담 전에 국민이 먼저 그 대강을 알아야 한다. 국민은 정부와 군대의 솔직하고 상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래야 국민의 지지라는 ‘힘’도 생기지 않을까. 유독 한미동맹 문제에 대해서는 소통이 부재하는 현실에서 다시금 자주를 위한 3위일체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