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현의 중남미 톺아보기

트럼프의 보우소나루 구하기와 더 강해지는 룰라

2025-08-19 13:00:04 게재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 부과한 새로운 상호관세율이 이달 7일 발효됐다. 이번 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국가는 50%의 관세율이 적용된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지난 4월 부과된 10%의 기본관세율에서 무려 5배가 인상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세를 물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1974년 제정된 무역법 301조에 따라 미국 무역대표부(UTCR)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한 조사도 시작됐다. 만약 UTCR이 브라질의 정책 또는 관행이 비합리적이고 차별적이며 미국의 상거래에 부담을 주거나 제한적이라고 판단하면 추가적인 관세 또는 기타 경제제재 등 더 많은 조치가 취해질 수도 있다.

트럼프의 보우소나루 구하기

브라질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조치는 여러 면에서 독특하다. 우선, 브라질은 미국의 몇 안되는 무역 흑자국이다. 2024년 미국은 브라질과의 무역에서 70억달러가 넘는 흑자를 기록했다. 따라서 무역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브라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없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은 룰라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브라질 대법원의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에 대한 재판과 미국 소셜미디어 기업에 대한 제재를 관세율 인상의 근거로 제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브라질에 대한 트럼프의 관세 위협은 무역개선보다는 이념적 동지인 보우소나루를 구하려는 정치적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브라질의 대응이 만만치 않다. 브라질은 미국이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보우소나루는 2022년 선거에서 룰라에게 패배한 후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쿠데타 계획에는 룰라 대통령과 아우키민 부통령, 그리고 모라이스 대법원 판사에 대한 암살음모도 포함돼 있다.

쿠데타 시도는 군 지도부가 참여를 거부하면서 실패했으나, 선거 결과에 불복한 수천명의 보우소나루 강성 지지자들이 룰라 대통령의 취임 1주일 뒤 브라질의 대통령궁, 대법원 그리고 의회를 습격하면서 혼란은 절정에 달했다.

브라질 선거법원은 권력남용과 브라질 선거제도의 정당성 훼손 혐의를 적용해 보우소나루의 피선출권을 2030년까지 금지했다. 그리고 9월 2일 브라질 대법원에서 보우소나루의 쿠데타 시도 혐의에 대한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유죄로 확정되면 보우소나루는 최대 43년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보우소나루의 감옥행을 막기 위해 “정치적 마녀사냥으로 진행되는 재판을 즉각 중단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트럼프는 보우소나루에 대한 기소를 이유로 석유 오렌지쥬스 목재 항공기 등 일부 면제 품목을 제외한 대부분의 브라질산 제품에 대해 50%의 관세율을 확정했다. 또 보우소나루 사건을 담당한 판사 및 관계자들의 미국 비자를 취소하고 미국 내 자산 동결은 물론 은행거래도 하지 못하도록 제재했다.

그러나 브라질 대법원은 한발 더 나아가 트럼프의 개입을 도발한 보우소나루와 그의 아들들이 매국죄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우소나루의 쿠데타 재판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고 브라질 국민의 72%가 트럼프의 관세 위협이 잘못됐다고 믿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보우소나루 구하기가 과연 성공할지 의문이다.

룰라의 단호하고 실용적인 대응

트럼프의 관세위협에 전세계 지도자들이 모두 쩔절매는 데 반해 룰라는 단호하고 강력하게 맞서며 독립적인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공고히 하고 지지율을 높이는 기회로 이용했다. 브라질은 남미의 거인이지만 미국이라는 북쪽의 더 큰 거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랜 기간 주권과 자율성을 핵심 가치로 실용주의 외교전략을 추구해왔다.

트럼프가 관세위협을 발표한 직후 룰라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브라질 사법부의 독립성을 수호하고 브라질의 주권이 협상카드가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이전에 룰라는 미국이 50%의 관세를 적용하면 브라질도 경제상호주의법에 따라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미국 관세에 대한 보복을 만류하는 산업계의 의견을 수용해 최근에는 외교와 다자주의를 통한 문제 해결 방식으로 선회했다.

룰라는 “세상은 넓고 브라질과 협상을 원하는 나라는 많다”며 “패배에 울부짖는 대신 우리는 다른 곳에서 승리를 찾겠다”고 말했다. 시장 다변화를 통해 위기를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과의 협상에 대해서도 여전히 문을 열어놓고 미국이 준비되면 언제든지 대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추가 관세로 피해를 본 수출업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총 300억헤알(55억달러)을 지원하는 ‘브라질 주권계획(Sovereign Brazil Plan)’도 내부 동력을 먼저 다지겠다는 룰라의 실용주의적 조치로 볼 수 있다.

룰라의 단호하고 실용적인 대응은 그의 정치적 입지 회복과 2026년 대선 향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물가상승과 국내 정치적 어려움 속에서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던 시점에 미국과의 갈등 고조는 룰라에게 행운으로 작용했다. 룰라에 대한 지지율은 관세압박이 시작된 5월부터 꾸준히 상승하더니 7월에는 지지율(50.2%)이 반대(49.7%)를 넘어섰다. 국가주권 수호에 대한 룰라의 단호한 대응은 지지층을 결집하고 지지율을 확대하는 기회가 됐다. 이는 브라질의 국제적 수호자라는 전통적인 대통령의 이미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26년 선거를 앞두고 관세는 브라질의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되겠지만 파국적인 수준은 아니다. 또 그 책임을 보우소나루와 백악관에 로비활동을 벌인 그의 아들 에두아르도 보우소나루 탓으로 돌릴 수도 있어 브라질의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2026년 정권연장을 노리는 룰라와 노동당에게는 유리한 상황이다.

트럼프를 진짜 분노하게 만든 브릭스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가 브라질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로 한 이유가 보우소나루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보지만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분노를 유발한 진짜 이유는 브릭스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브라질은 7월 6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17차 브릭스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당시 룰라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하고 브릭스 회원 간 무역에서 달러 대신 자국 통화 사용을 주장했다.

또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진전시켰다. 그에 앞서 5월에는 중국-카브리국가공동체포럼(CELAC) 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해 광산과 교통인프라, 항만, 인공지능 산업에 대한 30개 이상의 투자협정에 서명했다. 브라질과 미국의 경제통합 수준이 낮고 양국 간 안보협력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점점 더 밀착되는 브라질과 중국과의 관계를 트럼프로서는 그냥 두고볼 수 없는 아주 불편한 상황이다.

브릭스가 회원국의 수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면서 남반구의 재편을 촉진하고 선진국그룹으로부터 독립을 추진하면서 브릭스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적 타깃으로 부상했다. 브라질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압박은 아이러니하게도 브라질과 중국을 비롯한 브릭스 국가들을 더욱더 밀착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트럼프의 관세위협 직후 시진핑은 룰라에게 “중국은 브라질과 협력해 남반구 주요 국가들의 단결과 자립의 모범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시진핑은 브릭스를 “남반구에서 합의를 구축하는 핵심 플랫폼”이라고 표현하고 브릭스가 남반구의 목소리를 증폭시키기 위해 협력을 강화하자고 촉구했다.

최근 브릭스는 새로운 회원국을 지속적으로 추가하며 급속한 성장궤도에 올랐다. 많은 국가가 실용적인 이유로 브릭스에 끌리며 서구의 지배를 덜 받는 다극화된 세계질서를 희망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브릭스는 제도적 결속력이 부족하고 우선순위에 대한 의견 차이가 커 상징적인 클럽에 머물 위험도 있다.

손혜현

고려대 연구교수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