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에서 주가조작으로 피해자 속출
초소형주들 급등 뒤 폭락
7개 종목서 37억달러 증발
미국 증시에서 이른바 ‘펌프 앤 덤프(pump and dump)’ 주가조작 사기가 기승을 부리며 수많은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몇 주간 나스닥에 상장된 중국계 초소형주 7개 종목이 소셜미디어에서 집중적으로 홍보된 뒤 주가가 80% 이상 폭락하면서 피해가 속출했다는 것이다.
투자분석사 인베스터링크(Investor
Link)의 집계에 따르면 콘코르드 인터내셔널(CIGL), 오스틴 테크놀로지(OST), 톱 킹윈(WIN), 스카이라인 빌더스(SKBL), 에버브라이트 디지털(EDHL), 파크 하 바이올로지컬 테크놀로지(PHH), 페톤 홀딩스(PTHL) 등 7개 종목에서만 시가총액 37억달러가 증발했다.
이들 종목은 모두 거래 전 소셜미디어와 왓츠앱 투자 그룹에서 집중 홍보된 뒤 급락했다.
연방수사국(FBI)은 지난달 “펌프 앤 덤프 주식 사기와 관련한 피해자 신고가 전년 대비 300% 증가했다”며 “사기꾼들이 합법적 중개사나 잘 알려진 애널리스트를 사칭해 투자자를 노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계 기업이 사기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피해자들은 일반 개인투자자부터 전직 외교관까지 다양하다. 런던에서 경영코칭 회사를 운영하는 티아 카스타뇨는 페이스북 광고를 통해 한 왓츠앱 그룹에 들어간 뒤 오스틴 테크놀로지에 투자했다가 전 재산을 잃었다. 그는 “배가 텅 빈 듯한 공허함과 수치심이 남았다. 내 판단을 계속 의심하게 되고, 바닥이 꺼진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유럽의 한 개인투자자 역시 페이스북 광고를 클릭한 뒤 참여한 왓츠앱 그룹에서 페톤 주식을 매수했다가 하루 만에 95% 폭락을 맞아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뼈아픈 경험이었다”고 토로했다. 이 투자자는 “처음에는 내가 인공지능 봇인지 확인하는 등 교묘한 수법으로 신뢰를 주었다. 합법적 중개사처럼 보였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에서 식음료 회사를 운영하는 누신 미르쇼크라이는 오스틴 테크놀로지가 대형 상장사와 협력한다는 말에 속아 7만달러를 잃었다. 그는 “왓츠앱 그룹에서 제공된 정보는 모두 가짜 참가자들이 흘린 것이었다. 실제 인원은 우리 피해자뿐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수법은 단순한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인베스터링크의 매튜 미셸 창업자는 “거래소와 규제기관에 수개월째 특정 종목의 이상 활동을 경고해왔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페톤 주가가 하루 만에 95% 폭락하기 3주 전 이미 징후를 포착해 시장에 알렸다. 그러나 나스닥과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언급을 피했다.
사기의 온상은 소셜미디어였다. 미셸의 분석에 따르면 오스틴 주가 폭락 전, 레딧(Reddit)에는 2시간 만에 12명의 이용자가 비슷한 홍보 글을 올렸는데, 위치정보를 추적한 결과 일부는 러시아와 이란에서 발신된 것으로 확인됐다.
메타는 “이런 콘텐츠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인 기술 투자를 통해 사기를 차단하고 있으며, 은행·정부·사법당국과 협력해 범죄를 막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 장치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영국 변호사 라이언 스위트남은 “최근 몇 달 동안 중국계 동전주들과 연루된 펌프 앤 덤프 사건과 관련해 100명 넘는 피해자들이 사건을 의뢰해왔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해 적자 440만달러를 기록한 중국 한방의학 기업 리젠셀 바이오사이언스는 올해 들어 주가가 600배 가까이 급등하며 시가총액이 380억달러를 돌파한 뒤 다시 83% 폭락했다. 회사의 관여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같은 밈주식(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집중 매수하는 종목)의 극단적 변동은 시장의 불안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