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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폭력 해법, 우리 일상의 권력구조를 돌아보자

2025-08-20 13:00:04 게재

최근 잇따른 교제폭력에 관한 뉴스는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교제폭력 사건은 2018년 1만203건에서 2023년 1만3939건으로 40% 가까이 폭증했다.

언론도 친밀한 관계 내 여성 살해 피해자가 2024년 한 해에만 최소 181명에 달하며, 미수에 그쳐 생존한 여성이 374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살해 위협까지 경험한 피해자를 고려하면 피해자 수는 최소 650명에 달한다고 한다. 범죄시계로 환산하면 평균 13.5시간마다 한명이 죽거나 고통에 신음하는 셈이다. 이는 최소치일 뿐 숨어있는 사건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신체적 폭력 등 유형적 피해에만 주목하고 있다.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전략적인 지배·학대의 패턴을 인식하고, 조기에 국가적 시스템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다. 반면 영국 호주 캐나다는 교제폭력을 ‘강압적 통제(coercive control)’로 규정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상대방의 일상을 지배하고 자율성을 빼앗는 행위에 대해 국가가 초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이다.

교제폭력의 본질은 지배와 통제 욕구

그동안 교제폭력은 대체로 쉬쉬하거나 국가가 개입을 자제하는 사적 영역으로 봐왔다. 하지만 최근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공공의 안전문제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교제폭력은 단순히 남녀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사회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헤게모니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남성-가해자, 여성-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고정관념에 머무르고 있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전체 교제폭력 피해자 중 18.2%가 남성이었고, 2023년에는 19.4%, 2024년에는 21.5%로 증가하는 등 범죄 양상이 크게 변하고 있다.

교제폭력의 본질은 지배와 통제 욕구에 있다. 불확실한 가부장성과 불안정한 관계가 주요 동기로 작용하고, 가해자의 집착과 통제 행동은 대개 신체적 폭력의 전조가 된다. 예방과 대응을 위해서는 이러한 위험신호를 조기에 인식해야 하며, 집착과 통제 행동을 사랑의 방식으로 혼동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인식 전환과 교육이 필요하다.

미디어는 종종 남성 우월적 이미지와 일방적 관계의 폭력성을 낭만적인 것이거나 불가피한 것처럼 미화하곤 하지만 이제는 이를 분명한 범죄로 인식해야 한다.

인간은 일부 ‘고정관념’을 통해 개인의 인지적 한계를 보완하며 진화해 왔다. 하지만 그 사회적 편향성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낳고 있다. 교제폭력을 젠더문제로만 보는 고정관념은 피해 실태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게 하고, 사회적으로 편향된 시각을 낳아 문제를 악화시킨다.

특히 현장 경찰관의 인식 변화는 매우 중요하다. 현장 판단 하나가 피해자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사관 대상 연구 결과 일부 경찰관이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교제폭력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교제살인까지 치달은 폭력 사건에서 신속하고 과감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한 원인 역시 이런 데 있을 것이다.

교제폭력 피해자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관계를 떠나려는 시점’이다. 이 때문에 사전 예방이 매우 어려운 범죄이고, 경찰의 사후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사회 전체가 나서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족과 친구 등 가까운 이웃도 경고신호를 감지하면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선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특히 10·20대의 일상 공간이 된 디지털 플랫폼에서 일상화된 여성 등 특정 집단에 대한 폭력성에도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 공간이 젠더 불평등과 왜곡된 권력구조가 학습되는 온상이 되지 않도록 사회적 대응이 절실하다.

사회 전체가 나서 예방 대책 마련하자

교제폭력이 더 이상 연애의 낭만 뒤에 숨지 못하게 해야 한다. 교제폭력 등 관계성 범죄의 증가는 우리의 무의식과 일상에 깊게 스며든 권력구조를 성찰하고 피해자의 목소리와 제도의 빈틈을 꼼꼼히 들여다볼 계기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급증하는 교제폭력은 오랜 시간 ‘정상적’이라고 여겨왔던 우리의 일상적 관계의 틀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이상훈 대전대 교수 전 한국경찰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