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MAGA 특허’ 폭풍 온다 ②
고품질 IP 확보 절실…열악한 특허심사 현실 해소해야
특허심사관 1명이 연 186건 처리, 미국의 3배 … 투입시간은 유럽의 1/3
IP인프라 강화 외면한 탓 … “특허수수료 전출금으로 전문인력 보강해야”
미국 트럼프정부가 지식재산(IP)을 경제안보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특허수수료를 대폭 올릴 계획이다. 3대 특허법도 강화한다. 세수확보와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서다. 미국우선주의(MAGA) 전략이 IP정책에도 그대로 관통하는 셈이다.
이런 미국의 IP 흐름은 한국에 매우 불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정부와 기업들은 미국발 IP 폭풍에 대비해야 한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 5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트럼프정부의 IP보호 강화가 특허가치 평가의 불확실성을 높일 가능성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IP업계에서는 고품질 IP 확보를 미국발 IP 폭풍을 이겨낼 유력한 대안으로 꼽는다. 하지만 한국의 IP 기반은 매우 열악하다. 고품질 IP 확보를 위해 과감한 제도개선과 투자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열악한 한국 특허심사 기반 = 한국의 특허심사 현실은 ‘고품질 IP 확보’를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다. 주요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허청 자료(2023년 기준)에 따르면 한국 특허심사관 1명이 연간 186건의 특허를 처리한다. 하루에 특허 2건 가량을 심사하는 것이다. 이는 유럽(59건)의 3.4배, 미국(67건)의 3배에 달한다. 중국(91건)보다도 2배 이상 많다.
처리건수가 많다보니 심사처리기간은 길고 투입시간은 짧다. 심사 1건당 투입시간은 한국은 12.1시간에 불과하다. 유럽(33.9시간)의 3분의 1 수준이다. 미국(29.9시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심사관들이 과중한 업무에 내몰려 심사품질 저하와 불량특허 양산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실제 심사관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들여다 볼 시간도 없다”는 말이 나온지 오래다.
처리기간도 주요국 특허청에 비해 길다. 한국은 16.1개월 걸려야 특허심사가 마무리된다. 반면 일본(9.5개월)은 한국보다 6.6개월, 유럽(5.0개월)은 11.1개월 더 빠르다.
게다가 심사관 1명이 담당하는 기술분야도 한국은 80개다. 미국(9개) 중국(6개)의 심사관보다 10배가 더 넓은 기술범위를 심사하고 있다. 일본(47개) 유럽(20개)보다 2~4배 가량 더 많다.
주요국들보다 전문적이고 심도있는 특허심사가 제약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주요 5개국보다 내수시장 규모가 가장 작다. 혁신기술을 기반으로 빠르게 해외시장에 진출해야 생존할 수 있다. 빠르고 신속한 특허심사가 절실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셈이다. 우리기업이 해외시장에서 기술선점 기회를 상실한다는 의미다.
IP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특허심사 현실은 한국기업의 핵심기술이 ‘질 낮은 특허’로 기술패권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특허수수료는 정부의 쌈짓돈 = 이는 20년간 특허심사 인프라 투자를 방치한 결과다. 고품질 IP 확보의 첫발은 특허심사관 심사능력에 있다. 그동안 국정감사에서도 ‘특허품질’ 문제 원인으로 특허심사관 부족이 꼽혔다.
고품질 IP 확보를 위해 무엇보다 특허심사관 확충이 우선돼야 한다. 특허행정과 서비스에 도입되는 인공지능(AI)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전문인력 확대는 필요하다. 심사관에게 충분히 검토하고 분석하는 시간이 주어져야 특허품질 저하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2002년 441명의 특허심사관이 활동했다. 21년이 지난 2023년엔 980명으로 늘었다. 매년 25.7명이 증가했다. 그러나 통계에서처럼 심사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동안 정부는 공무원 증원에 따른 부담과 예산을 이유로 특허심사관 인력보강을 외면해 온 탓이다.
지금은 기술패권시대다. 미국정부가 ‘‘MAGA 특허’로 무장하고 있는 만큼 한국은 고품질 IP로 맞서야 한다. IP업계가 특허심사관 인력 확충을 강하게 요구하는 배경이다.
다행인 건 별도의 재정을 투입하지 않아도 심사관을 확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특허수수료 중 일부가 매년 국가의 일반회계로 빠져나가고 있다. 10년간 약 9672억원에 달한다. 기획재정부가 특허수수료 일부를 매년 일반회계전출금으로 편성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국가재정법 제13조에 따라 특허청 여유재원을 일반회계로 전출해 활용하고 있다. 1조원 가까운 특허수수료가 특허와 무관한 일반경비로 사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전출금 편성기준도 없다. 연 특허수수료 총액의 9.6~24.8%로 들쑥날쑥이다. 일반회계전출 근거규정에도 맞지 않다. 국가재정법(제13조)에서는 회계·기금 간 여유재원의 전입·전출은 ‘회계 및 기금의 목적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특허심사관 부족은 특허청의 큰 고민거리다. 자금부족으로 특허심사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게 원인이다. 수수료 전출로 목적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탈취 중소벤처기업의 무료변론 활동을 하는 재단법인 경청의 박희경 변호사는 “ 특허수수료는 특허 관련 서비스에 대한 직접적 대가로 징수되는 목적 수입”이라며 “특허수수료를 IP행정과 산업발전에 직접 기여하는 사업에 한정해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