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시장혁신 없는 성장, 기대할 수 있나
이재명정부는 성장회복을 제일의 국정과제로 삼으면서 다양한 정책을 야심차게 쏟아내고 있다. 이런 정부 정책을 두고 다양한 비판적 점검이 이루어지고 있다. 저성장 국면에서 필요한 재원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느냐도 그중 하나다.
관련해서 주의해야 할 지점이 있다. 성장회복에서 정부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앞에서는 미국이 관세전쟁으로 가로막고 있고 뒤에서는 중국이 사정없이 밀어제치는 진퇴양난의 생존위기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없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점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 산업화 시기와 같은 정부 주도의 성장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시장혁신 없이는 정부가 아무리 제 역할을 다해도 성장회복은 이루어질 수 없다.
미국 네브래스카 주립대에 세계 경영학계의 권위자인 이상문 교수가 있다. 이 교수는 밀실 혁신의 시대는 가고 ‘개방 혁신 공동창조의 시대’가 왔다고 설파해 왔다. 과연 이 교수의 주장을 가장 앞장서 구현하고 있는 곳은 어딜까? 의외라고 여길지 모르나 단연 중국의 화웨이를 꼽을 수 있다.
세계가 주목하하는 화웨이의 개방 혁신 모델
최근 많은 국내 인사들이 중국의 인공지능(AI) 굴기 현장을 탐방하기 위해 다투어 찾은 곳이 있다. 상하이에 있는 화웨이 롄추후 R&D센터다. 축구장 225개 크기에 호텔급 시설에서 석박사급 2만4000명이 연구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이곳에서의 연구 중 화웨이 내부용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안면인식 기술을 보유한 센스타임 등 외부 기업과의 기술융합이다. 일련의 개방 혁신 공동창조를 거쳐 도시 관리 시스템 등 초대형 상품 서비스가 탄생한다. 여기에 발맞추어 중국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세계 40여개 나라 200개 도시에 중국산 도시 관리 시스템을 수출했다.
국내로 눈을 돌려 보자. 과연 화웨이와 같은 혁신적 성장 모델을 선보이고 있는 곳이 있는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한국의 제조업이 지난 10년 동안 제자리걸음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한국의 기업 전반이 과거의 성공에 취해 낡은 습성에서 탈피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 역사상 실패의 절반은 과거 성공의 추억에서 비롯되었다는 아놀드 토인비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 경제 앞에는 적어도 세 가지 혁신의 과제가 있다. 먼저 성장의 중심축이 큰 기업에서 작은 기업으로 이동해야 한다. 큰 기업을 더 키우는 방식으로는 장기적 성장국면을 열기 어렵다. 문국현 한솔섬유 대표 지적대로 작은 기업을 1000개 히든챔피언으로 육성할 때 국내총생산(GDP)가 2~3배로 커지는 장기 성장국면이 열릴 수 있다.
시장혁신 또한 수성에 집착하는 큰 기업들보다 작은 기업들 몫이 되기 쉽다. 큰 기업들이 프론티어 AI 기업들 위세에 눌려 국내용 AI에 집착할 때,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는 소버린 AI가 글로벌 시장에서 맞짱 뜰 독자적 기술력이라고 설파하고 당차게 나아가고 있다.
두번째 혁신과제로 대량생산 체제에서 벗어나 고객 맞춤형 글로벌 선도주자를 지향해야 한다. AI 시대를 맞이해 시장은 빠르게 고객 맞춤형 생산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학기술력과 문화창조력을 겸비한 한국은 이 점에서 매우 풍부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대량생산 체제에 안주하면 중국의 공세를 견뎌내기 힘들다. 고객 맞춤형 세계 최고 수준을 확보한 K-조선은 다시금 나래를 펴고 있다. 반면 대량생산 체제에 안주해 있던 석유화학 산업은 중국의 저가공세 앞에서 연쇄적인 붕괴 위험에 직면해 있다.
세번째 혁신 과제로 기업이 사람을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간주하는 인식 전환을 해야 한다. 저마다 특색있는 고객맞춤형 생산은 같은 동작을 반복하기 쉬운 기계 중심 자동화로는 온전히 보장할 수 없다. 사람의 창조적 역할과 자동화 기기가 조화를 이루는 사람 중심 자동화가 필수적이다. 사람 중심 자동화에서 사람은 최대한 키워야 할 자산이다.
혁신적 성장 모델의 작은 불씨들 만들어지길
현대 중국의 창건자 마오쩌둥은 ‘한 점 불씨가 들판을 태운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성장 국면으로의 전환은 시장 안에 혁신적 성장모델이 퍼져나갈 때 가능하다. 곳곳에서 혁신적 성장모델의 작은 불씨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